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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약의 반란..'카피약·리베이트주범 오명은 그만'

천승현 기자I 2014.07.30 06:00:00

제네릭 등장으로 환자 약품비 절감
국내업체들, 제네릭으로 연구비 마련·신약 개발 ''선순환'' 본격화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2000년대 들어 국내 제약산업에서 제네릭은 ‘골칫거리’로 불렸다. 제네릭 시장의 과열경쟁은 불법 리베이트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국내제약사들이 신약은 개발하지 않고 연구비가 적게 드는 제네릭 개발에만 열중한다”는 핀잔도 반복됐다. 하지만 저렴한 제네릭의 등장으로 환자들은 약값을 줄일 수 있게 됐고 제약사들은 제네릭을 캐시카우로 활용하면서 신약 성과를 내고 있다.

◇제네릭 등장으로 독점시장 붕괴..환자 약품비 절감

발기부전치료제 수요의 급증은 제네릭의 대표적인 긍정적 현상으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40대 이상 남성 중 발기부전 환자는 5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상당수 환자들은 전문적인 치료를 꺼리거나,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가짜약을 복용해왔다. 한알에 1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발기부전치료제의 가격도 환자들에겐 부담이었다.

박노석 한미약품(128940) 이사는 “저렴한 비아그라 제네릭의 등장으로 환자들은 발기부전 치료에 소요되는 약품비 부담을 한층 덜 수 있게 됐다”면서 “부작용 위험성이 큰 가짜 약 시장을 대체했다는 점에서 국민건강에도 상당부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고가 치료제일 경우 제네릭의 약값 절감 효과는 더욱 크다. 지난 2012년 셀트리온(068270)은 류마티스관절염 치료제 ‘레미케이드’를 본따 만든 바이오시밀러 ‘램시마’를 오리지널의 30% 이상 저렴한 가격으로 발매하자 환자들의 약값 부담은 연간 800만원대에서 600만원대에서 떨어졌다.

제네릭의 등장은 신약의 가격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건강보험 재정 절감으로 이어진다. 현행 약가제도에서는 제네릭이 발매되면 오리지널 의약품은 종전의 70% 수준으로 떨어진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흡입용 천식치료제 ‘세레타이드’는 지난 2011년 특허가 만료됐지만 흡입기 개발이 어려워 제네릭이 발매되지 못했다, 최근 한미약품이 흡입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제네릭을 내놓았고 세레타이드의 약가는 이달부터 30% 인하됐다. 세레타이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약 10조원의 매출을 기록 중인 대형 제품이다.

주요 제네릭 제품 처방실적 현황
최근에는 제네릭도 오리지널 의약품과 약효가 동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제네릭의 선호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삼진제약의 항혈전제 ‘플래리스’는 지난해 412억원어치 처방됐다. 오리지널 ‘플라빅스’ 561억원에 근접한 수치다. 일동제약의 위장약 ‘큐란’은 오리지널 ‘잔탁’을 뛰어넘은지 오래다.

오리지널보다 복용법을 개선한 제네릭도 속속 등장했다. 씨티씨바이오, 서울제약, 광동제약 등은 알약 형태의 비아그라를 필름형태로 개선한 제네릭을 내놓았다. 지갑에 휴대하기 편하고 물 없이 복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최근 판매량이 급증하는 추세다. 한미약품은 씹어먹는 비아그라 제네릭을 판매하고 있다.

서울제약은 올해 들어 정신분열병치료제 ‘아빌리파이’, 치매치료제 ‘아리셉트’ 등도 필름형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알약을 삼키기 힘든 환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노림수다.

◇‘제네릭=내수용’은 옛말..해외시장 노린다

제네릭 제품의 해외시장 진출도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도 최근 눈에 띄는 변화다. 기존에는 제네릭이 내수용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한미약품은 최근 미국 제네릭 1위 업체 악타비스와 주사용 관절염치료제 ‘히알루마’의 미국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히알루마’는 히알루론산 성분의 제네릭 제품이다.

씨티씨바이오(060590)는 세계 제네릭 1위 업체 테바를 통해 87개국에 필름형 비아그라의 수출 계약을 맺었다. 씨티씨바이오는 최근 ‘시알리스’의 필름형 제품의 허가도 받았고, 현재 해외 수출을 추진 중이다. 광동제약도 러시아, 베트님, 필리핀 등에 필름형 비아그라를 수출키로 했다.

대웅제약은 보툴리눔톡신제제 ‘나보타’를 미국 등 60여개국에 수출키로 했다. 미국 의료진이 고가의 오리지널 제품 ‘보톡스’를 대체할만한 저렴하고 우수한 제품을 물색하다 ‘나보타’의 수입을 전격 결정했다. 대웅제약은 백혈병치료제 ‘글리벡’ 제네릭도 이란에 수출키로 했다. 일동제약, 삼진제약 등은 해외에 복제약 원료의약품을 수출 중이다. LG생명과학은 직접 생산한 제네릭을 글로벌제약사 화이자에 공급한다.

전홍렬 씨티씨바이오 부사장은 “국내제약사들의 약물 합성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으로 평가된다”면서 “적극적인 설비 투자를 통해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 합성 기술을 인정받으면 다국적제약사들이 독점중인 시장에 제네릭으로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네릭 밑천으로 신약 개발

국내 의약품 역사에서 제네릭이 차지하는 역할은 크다. 최근 국내제약사들의 신약 성과도 제네릭이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다.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등 2000년대 이후 제네릭 분야에 강점을 갖는 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속속 결실을 맺고 있다.

정윤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제약산업지원실장은 “최근 해외사업이나 신약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업체들은 대부분 제네릭 사업으로 재원을 마련했다”면서 “글로벌제약사 테바가 제네릭을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나선 것처럼 국내제약사들도 제네릭을 캐시카우로 활용, 연구비에 투입한다는 점은 고무적인 현상이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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