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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30년 뒤 펼쳐질 세상에 대한 스케치다. 이 단정적인 그림만으로 ‘맞다, 틀리다’를 말하긴 대단히 어렵다. 복합적인 네 가지 장면이 섞여 있어서다. 거칠게 정리하면 이런 거다.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는 ‘지성’의 세계, 자아도취에 빠지는 ‘탐욕’의 세계, 공동체로 회귀하는 ‘절제’의 세계, 새로운 문명의 붕괴가 시작되는 ‘공포’의 세계. 거창하게 나열해놨지만 한 가지만 분명하다. 지금 우리가 예측하는 미래가 단 하나의 라인 아래 맞춘 듯 정연하게 진행될 거란 환상은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해 정치와 금융시장은 물론 식품가격, 스포츠 판도, 날씨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변동성으로 ‘난리블루스’를 추듯 흔들릴 거란 얘기다.
그렇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과거와 현재가 그랬듯. 다시 말하면 미래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도 없다는 뜻이다. 미래학자이자 전략가로 웹사이트 ‘와츠 넥스트’를 창립한 리처드 왓슨과 시나리오 설계자인 올리버 프리먼 시드니기술경영대 교수가 이 지점서 뜻을 모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의 미래엔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일단 30년 뒤를 내다봤다. 2040년의 그림은 그렇게 나왔다. 다만 이 그림을 보는 데 조건이 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게 아니다”란 저자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차라리 잘못 예측하는 걸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이를 위해 개념 하나를 끌어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다.
▲“미래는 하나다? 천만에 말씀”
‘누구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확실한지 어떻게 아나.’ 이것이 두 저자가 세운 줄기의 정수다. 여기엔 대다수 미래 예측서들이 범해온 폐단에 대한 비난이 들어 있다.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미래가 펼쳐질 거란, 단선적인 사고에 입각해 저지른 썩 용감한 판단이란 지적이다. 직선적인 분석은 다양하게 분출될 사건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따라서 완벽한 예측에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논지다. “미래는 하나 이상이다.” 그러니 시나리오 플래닝이 필요하다.
크게 복잡하지 않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풀어놓고 각각의 대응전략을 검토하면 된다. 한마디로 입체적이 되자는 얘기다. 유토피아부터 디스토피아까지, 점진에서 급진까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다고 단언한다. 지성·탐욕·절제·공포는 거기서 나온 시나리오다. 끝을 알 수 없는 소비주의가 지구를 파멸시킬 수도 있고, 공동체 지향적인 생활방식이 그 소비주의를 막을 수도 있다. 제한된 자원을 두고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울 수도 있고, 과학기술이 그런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다. 그게 미래다.
▲“트렌드가 미래지향적? 과거지향적!”
두 저자는 예측을 위해 현재의 트렌드를 연장하는 일도 잘못됐다고 판단한다. 결국 불연속성, 변칙, 예측불가능한 요인들이 트렌드를 구성하고 있는 전부가 아니냐는 거다. 미래지향적이지 않다. 오히려 과거지향적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래는 현재의 트렌드가 어떻게 발전하는가가 아니다. 그저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다.
그렇게 저자들이 짚은 몇몇 단면을 더 보자. 최소한 30년 뒤엔 자연과 컴퓨팅의 융합이 대세다. 소형컴퓨터가 장착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위험에 처해 뛰기라도 하면 신발이 경찰을 부른다. 중국이 세계 재정을 좌우하는 건 진짜 현실이 된다. 나태해진 서양과 북반구, 젊고 활기찬 동양과 남반구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특별한 건 한반도의 통일.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엄청난 근로시간으로 명성을 날린다. 노동과 실업의 균형을 위해 세계가 2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제한했음에도 말이다.
▲하이브리드 인간의 고뇌
변수는 로봇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의 학식과 지성을 기계 한 조각에 담아낼 수 있는가는 여전히 기술보단 윤리의 문제다. 그럼에도 인간은 로봇을 계속 양산하고 특출난 능력을 부여하게 될 거다. 사실 문제될 건 없다. 2014년에도 ‘차’라는 기계를 좋아하는 남자들이 있지 않나. 그 논리에선 설사 미래의 한 여자가 로봇과 사랑에 빠진다 한들 탈될 게 없단 얘기다. 정작 난제는 엉뚱한 데서 생길 수 있다. 가령 사람 수보다 많아진 로봇으로 인해 정작 사람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 이때 사람에게 지급해야 하는 실업수당을 로봇에게 물려야 하는 게 아닌가가 이슈화될 수 있다는 거다.
솔직히 말해보자. 사실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처럼 고매한 아니 황당한 설정이 어디 있겠나. 그나마 고무적인 건 저자들이 정확한 미래보다 틀리지 않을 미래를 그려보려 했다는 거다. 최소한 오늘을 사는 이들이 미래학자의 전망과 점쟁이의 점괘 사이에서 고뇌하게 하지는 말자는 의지가 읽힌다. 도발적인 상상력이든 복원력을 갖춘 개방적 방안이든 간에 말이다. 게다가 이미 경고까지 하지 않았나.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그러니 대안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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