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시각)"디플레 끝, 인플레 시작"

정명수 기자I 2004.04.21 06:29:35
[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의장이 그린스펀 연준리 의장에게 물었다. "최근 소비자물가(CPI), 생산자물가(PPI)가 많이 오르고 있는데요." 그린스펀은 큰 눈을 껌뻑거리며, "디플레이션은 더 이상 이슈가 아니죠"라고 답했다. 이 한마디가 20일 시장의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주가는 급락했고, 국채 수익률도 급등했다.(채권가격 하락) 달러는 유로에 대해 강세로 돌아섰다. SW바체앤코의 피터 카딜로는 "디플레가 더 이상 이슈가 아니라면 지금 이슈는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라고 자문했다. 그린스펀은 스스로 "디플레 끝, 인플레 시작"을 선언한 셈이다. ◇인내심이 바닥났나 이날 월가는 그린스펀이라는 높은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GM이 예상을 웃도는 실적을 내놓고, 2분기 전망을 상향 조정하는 등 `어닝 서프라이즈`를 선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실적 호전이 시장 전체로 파급되지 않고, 해당 종목에 머물렀다. 베일라드베일앤카이저의 아서 미첼레티는 "기업 실적은 매우 훌륭했지만, 시장의 초점은 금리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은 작심을 한 듯했다. 모호한 말로 금리인상에 대해 직답을 피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지금까지 그린스펀(연준리)은 몇가지 특징적인 말로 통화정책을 설명해왔다. 지난해 그린스펀은 `바람직하지 않은 가격의 하락` 즉,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통화정책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플레 위험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그린스펀은 "상당기간(considerable period)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상당기간`은 지난해 하반기 내내 월가의 키워드였다. 올들어 그린스펀은 `상당기간`이라는 표현 대신 `인내심(patient)`을 들고 나왔다. "금리를 올릴 때까지 인내심을 발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은 드디어 인내심이 바닥난 모양이다. 이날 그린스펀은 "가격 결정 능력(Pricing Power)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새로운 표현을 썼다. `프라이상 파워`는 인플레이션의 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금리인상에 대비하라" 그린스펀은 의원들과의 일문일답에 앞서 미국 은행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은 금리인상이라는 도전에 대처할 충분한 능력과 준비를 갖고 있다"며 "금융시스템은 강력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 말을 "금리인상에 대비하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곧 금리를 올릴테니 은행은 이에 충분히 대비하라"는 뜻이다. 그린스펀 의장은 "은행들은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거나 사업부문을 변경함으로써 고금리시대에 경쟁력을 갖춰왔다"며 "은행간의 인수합병 속도는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포트폴리오`는 모기지론, 소비자신용, 크레딧 카드 등을 의미한다. 미국 은행들은 저금리 시기, 모기지 파이낸싱과 소비자신용으로 큰 재미를 봤다. 그린스펀은 "이제 금리를 올릴테니 이런 포트폴리오를 줄이고 새로운 수익원을 찾으라"고 경고한 셈이다. 새로운 수익원을 찾지 못하고, 경쟁에서 낙오한 은행은 피합병될 수 밖에 없다. 그린스펀은 "은행간 인수합병에 가속이 붙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렇다면 시장은 피터 카딜로는 "연준리가 예상보다 일찍 금리를 올리기 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카딜로는 "금리인상은 미국 경제가 저금리 정책과 같은 부양책 없이 홀로설 수 있다는 뜻도 된다"고 말했다. "연방기금금리 1%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IT 버블 이후 디플레이션 위협까지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낮출 수 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금리를 올린다. 그러니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를 굴려나가야한다." 그린스펀 의장은 시장에 이같은 메시지를 던졌다는 분석이다. 월가는 불황기를 견뎌내고, 수익력을 회복한 업종 대표주나 금리인상에 내성이 있는 필수 소비재 판매주 등 대안을 찾아나섰다. 금융주의 경우도 금리상승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린스펀이 예언한대로 `은행간 합병`이라는 재료가 숨겨져 있다면 투자자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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