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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서울대 진학률 성동구의 30배

조선일보 기자I 2003.10.24 07:00:05
[조선일보 제공] 고교 평준화로 이루려 했던 주요 목표들 중 하나는 ‘고등학교간 격차 해소’였다. 일류고와 이류고에 다니는 학생·학부모 간 위화감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였다. 평준화 도입 30년, 옛 개념의 좋고 나쁜 고교는 없어졌지만, 이것이 ‘좋은 지역’과 ‘나쁜 지역’으로 대체돼 더 큰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서울 강남 등 ‘좋은 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에선 교육열 및 학습 분위기 등을 타고 쉽게 일류대에 진학, 부와 지위를 세습하는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이는 강남구 출신 고교생들의 월등한 서울대 진학률에서 확인된다. 작년 강남구 소재 고교 졸업생들은 전국 평균보다 3.5배, 서울 시내 다른 구(區)보다 평균 2.3배, 많게는 30배나 서울대에 많이 들어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서울대가 최근 분석한 결과로, 서울대가 한 해 입학생들의 출신지를 이같이 전수 조사·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르면 2002학년도 전국 고교 졸업생 100명 중 0.95명이 서울대에 입학했으며, 서울에서는 1.48명이 입학했다. 반면 이 중 강남구 소재 고교 출신자는 100명 중 3.34명이었다. 강남구보다 서울대 입학생이 약간 많은 종로구는 서울과학고 등 특목고가 2개 있는 점이 이유로 분석돼 강남구가 실질적 1위로 평가됐다. 강남구같이 교육 여건이 좋은 지역에 살면 일류대에 진학할 기회가 커짐을 보여주는 통계다. 하지만 이들 지역은 ‘높은 집값’이란 방벽을 치고 있어, 가난한 학생들의 진입을 철저히 막고 있다. ‘실력 경쟁’이 돼야 할 입시에 부(富)라는 요소가 개입됨에 따라 공정 경쟁을 방해하는 셈이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10년전 서울 강남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평당 650만원으로 394만원이던 도봉구의 1.6배였으나, 지금은 강남구(2367만원)가 도봉구(603만원)의 3.9배나 된다. ‘교육특구’라 불리는 강남구 대치동의 경우, 1999년 말 평당 670만원이던 아파트 가격이 올해 2300만원으로 3.4배나 상승했다. 비평준화 시절, 가난해도 공부만 잘하면 일류대에 진학해 신분상승을 이룬 사례가 많았으나, 이젠 가난하면 일류대에 진학할 기회 자체가 줄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의 올해 신입생 중 아버지 직업이 농축수산업인 학생은 2.8%, 비숙련 노동자는 0.8%밖에 되지 않은 점도 이런 실태를 잘 보여준다. 요즘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버지의 ‘경제력’으로 강남에 살면서, 어머니의 ‘정보력’으로 좋은 학원·과외교사를 구해야 명문대에 간다”는 말이 진리처럼 유통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 학생들이 방학 때 서울 강남에 있는 학원을 다니기 위해 상경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부산에 사는 김모(고2)군은 부모 강요에 따라 지난 여름방학을 서울 송파구의 고모 집에서 보냈다. 강남 대치동에 있는 보습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였다. 김군은 “좋은 대학에 가려면 강남 학원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그랬다”며 “학원이 끝나면 또 다른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고급 승용차를 타고 대기하는 강남 학부모들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꼈고 ‘저들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완진(金完鎭) 입학관리본부장은 “우리 사회에서 소득 격차가 교육 격차로 벌어지는 부(富)와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며 “고교 평준화 도입 목적 중 하나가 ‘좋은 고교’와 ‘나쁜 고교’ 간의 위화감을 없앤다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좋은 지역과 나쁜 지역 구도로 모습만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서울대 부모직업 40%가 전문·경영·관리직 평준화 이후 부유층 자녀들이 사교육 등을 통해 성적을 많이 올려 일류대로 진학하는 현실을 반영하듯, 서울대 신입생 5명 중 1명은 ‘중상류층 이상’이며, 아버지 직업이 전문직 또는 경영·관리직인 경우가 10명 중 4명꼴로 나타났다.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올해 신입생 269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에서 20.5%는 자신을 ‘중상류층’, 1%는 ‘상류층’이라고 답했다. ‘아버지 직업’으로는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이 18.9%, 기업 경영주나 고급 공무원 등 경영·관리직이 20.5%였다. 중산층이라 할 수 있는 사무직도 24.4%였다. 반면 아버지 직업이 비숙련 노동자인 경우는 0.8%, 소규모 농축수산업은 2.8%밖에 되지 않았다. 단순 노동자 등의 자식이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은 바늘구멍 통과하기와 비슷해진 셈이다. 부모의 교육 수준을 보면, 올해 신입생 아버지의 70.8%가 대졸 이상이었으며, 어머니가 대졸 이상인 비율도 50.4%나 됐다. 반면 아버지와 어머니 학력이 중졸 이하인 경우는 각각 5.1%, 7.8%밖에 되지 않았다. 과외 경험이 있는 신입생은 69.2%로, 7할이 과외를 통해 서울대에 진학했다. 학원과외가 49.3%로 가장 많았고, 개인과외 16.2%, 그룹과외 3.6%였다. ‘고교 생활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을 묻는 질문에 ‘학교 수업’(10%)이나 ‘선생님과의 관계’(6.2%)라고 응답한 학생은 적었고, ‘학교에서 만든 친구관계’(69.1%)라고 답한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부는 학원 등 사교육을 통해 하고, 학교에는 친구 사귀러 간다”는 요즘 중고생 실태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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