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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머무르는 나라, 떠나는 나라[생생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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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미 기자I 2025.04.21 05:50:00

한국 러브콜도 마다하는 실리콘밸리 인재들
근무여건은 부수적…근본적인 이유 들여다봐야
정부가 중심 아닌 혁신기업 성장 토대 만들어야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한국에 교수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지만 고사했습니다. 연봉도 높지 않고 업무 여건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지금이 만족스럽거든요. 한국에 있는 주변 지인들은 가능하면 미국에서 자리 잡으려고 하고 계속 이곳의 생활이 어떤지 묻곤 합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A(42)씨는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회사의 인공지능(AI) 관련 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틈틈이 국내 대학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실리콘밸리의 근무여건이 만족스럽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분위기는 기자가 실리콘밸리에 잠시 거주했던 2년 전에도 비슷했다. 최종 목적지를 귀국으로 미국에 유학왔던 사람들조차도 ‘한국 문화에서 직장생활을 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계획을 틀었다. 해고 같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라면 미국에 남는 방향을 택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후 4시가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퇴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근무여건이 한국보다 헐렁한 것은 아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 이전에 출근하다 보니 오후 4시에 퇴근이 가능하다. 점심시간에도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다 보니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 있고 퇴근 이후 집에서 줌 회의를 하는 일도 다반사다. 구글 같은 빅테크 구내식당이 각각의 취향에 맞춰 식사가 가능하게 준비하거나 반려동물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게 하는 건 그저 복지를 좋게 해주려는 차원이 아니다. ‘일에만 집중하라’는 의미다. 최근에는 재택을 거의 없애고 주 5일 출근도 당연해졌다.

한국도 주 52시간 근무제를 채택했고 폭음하던 회식문화도 사라졌다. 신입사원들은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칼퇴근을 하며 회식이나 엠티도 선택사항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타트업들도 대기업 못잖은 연봉과 복지를 내걸고 있다. 그런데도 인재들은 앞다퉈 한국을 떠난다.

그럼에도 인재들이 한국을 떠나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이유는 단순히 연봉과 근무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실력자들이 모이는 곳에서 일한다는 건 개인의 경쟁력 차원에서도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창업에 긍정적인 환경이라 빅테크에서 나온 사람들의 창업 행렬도 줄을 잇는다. 그렇기에 투자 비수기에도 투자가 쏟아지고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며, 인재가 모여든다.

21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AI 시대와 관련한 공약이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는 예산 100조원을 투자해 AI 기본사회를 열겠다면서 무료 한국형 챗GPT, AI데이터센터 클러스터 조성, AI 단과대 설립 등을 내걸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은 이 후보의 공약을 조롱했지만 그들에게 기대하는 바도 없다.

테크업계에서는 정부가 공공배달앱 같은 서비스를 내놓으려고 하지 말고 혁신기업의 성장토대를 마련해달라고 한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을 인터뷰해 온 미디어 스타트업 ‘EO’의 김태용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인재가 남고 싶고 무언가 만들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민간을 중심으로 혁신기술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물적·인적 인프라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주축이 되는 시대는 혁신 기술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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