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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운동은 환경 거버넌스의 커다란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환경 거버넌스란 정부, 단체, 기관, 기업체, 주민 등이 자율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의 책임을 가지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선진국은 1960년대부터 고도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심각한 환경문제가 야기되기 시작하면서 환경운동도 본격화됐다. 1962년 출간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폭발적 사회적 환경운동을 촉발시킨 자극제가 됐다. 그리고 1968년 개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까지 뒤이어 발간되면서 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됐다.
그러나 이 기간 한국은 심각한 권위주의가 등장한다.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모든 사회운동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화운동에 집중됐다. 환경운동 역시 정치경제적 불평등의 관점에서 민주화운동 인사들에 시작됨으로써 환경운동은 정부의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환경운동과 환경정치가 발전하지 못한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도 꼽힌다. 단기간에 이룩한 고속성장에 대한 환상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으며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을 잠재적으로 형성시켰다. 환경에 대한 관심은 미약했다. 이런 상태에서 제도적으로 환경보호 주무부서도 탄생하기 어려웠다.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 환경청이 설립됐다. 즉 성장 이데올로기 역시 군사정권과 뗄 수 없는 만큼 한국 환경정치의 저발전은 한마디로 군사정부로 대변되는 비민주적 정치상황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 전쟁 경험 등 비슷한 경제구조와 역사적 단절을 겪었지만 다른 길을 걸은 대표적 국가도 있다. 녹색당이 주류정당으로 자리잡은 유일한 국가이자 시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은 국가, 바로 독일이다. 독일의 국토는 남한 면적의 3.6배이며, 인구는 8300만명, 게르만족으로 독일어를 사용하며 오랜 분권 국가 경험으로 시장도 지역 특색에 따라 발달해 있다. 제조업 기반의 산업구조이며 주된 산업분야는 자동차, 기계, 화학, 첨단 기술 분야다. 미국, 중국, 일본에 이은 세계 4위 경제대국이다.
세계 제2차 대전으로 황폐화한 환경을 재건하면서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60년대 독일사회의 권위주의적인 분위기에 저항한 격렬한 사회운동이 가라앉은 후 신사회운동이 시작되고, 대표적인 신사회운동인 환경운동도 적극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이 토대가 되어 녹색당이 결성·연방의회로 진출하면서 환경문제는 연방차원의 정치적 이슈가 됐다. 기존 정당들도 환경문제를 다루게 된다. 이러한 토대위에 설립된 연방환경부는 적극적으로 독일 환경정치를 이끄는 등 환경정치의 발전이 이뤄졌다.
특히 독일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진 배경엔 1986년 체르노빌 사태 등으로 방사능 위험에 대한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는 독일에 매우 충격적 사건으로 다가왔다. 라인강이 30톤의 독성 오염물질이 유입되면서 반경 100㎞에 걸쳐 모든 물고기와 작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면서 그 해 독일 연방 환경자연보호원자력안전부(BMU) 설립됐다. 집단 기억과 시민사회의 발달로 독일과 한국은 전후의 분단과 폐허에서 출발하였다는 유사성은 있지만, 환경정치는 큰 수준 차이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집단기억으로 각인될 만한 사건으로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 천성산 사건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지역적 이슈로 전 국민이 유사한 감정적 경험을 했다고 할만한 사건이 부재하다. 국내 환경운동은 노동, 학생, 민주화, 여성, 농민운동 등의 여타 사회운동에 비해 가장 최근에 등장했으며, 전국민적 생활과 밀접한 운동은 1980년대 후반이후, 전지구적 환경운동과 전국적 환경운동으로의 확산은 1990년대초부터 나타났다(한국사회와 사회운동으로서의 환경운동, 정현석).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의 환경운동은 여전한 성장제일주의 가치관과 무임승차의식 등으로 대중화 수준은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