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위축 국면에서 과도한 기준금리 인상이 한국과 세계경제에 일본식 장기불황을 불러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연구원은 최근 발표한 ‘성장과 물가의 딜레마 : 반면교사 일본의 교훈’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세계경제가 1990년 초반의 일본과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일본과의 유사점으로 경기위축과 물가상승, 빠른 긴축 등을 꼽았다. 경기가 위축되는 국면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과도한 금리 인상에 나설 경우 일본처럼 자산가격 거품 붕괴와 함께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그 발단은 1990년대 초반의 거품 붕괴였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저금리 정책에 편승해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은 3~5배까지 부풀려졌다. 이후 1990년대 초반 불황기가 시작됐고 일본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2.5%에서 6%까지 끌어올리면서 거품이 한꺼번에 붕괴됐다. 그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낮췄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긴 제로성장의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1990년대 초반의 일본경제와 유사한 점이 하나둘이 아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이뤄진 금융완화 정책으로 자산 가격에 상당한 거품이 끼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재의 경기 상태를 회복세 둔화 국면으로 진단하고 있지만 하강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음이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5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에다 그중 2회는 빅스텝(기준금리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일 만큼 금리인상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한은은 그동안 과도한 대응이 부족한 대응보다 낫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인플레가 국가와 서민경제에 끼치는 해악을 생각하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지난 1년 2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0.5%에서 3%로 올린 것만으로도 불어난 이자 부담을 감당 못하는 ‘영끌 푸어족’과 ‘깡통 전세’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이럴수록 경제 전반의 충격을 감안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과도한 긴축이 일본식 장기불황을 야기할 위험은 없는지 숙고해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