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령인구 줄자 부실대학 급증…美·日선 M&A 통한 구조조정 활발

신하영 기자I 2022.05.17 03:57:40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길을 찾자]대학구조조정
미국·일본도 학령인구 감소로 폐교 대학 증가
美, 2000년 이후 폐교대학 764곳…99% 사립대
日, 사립대 절반 입학정원 못 채워 재정난 허덕
美·日 대학 인수·합병 활성화…“한국도 확대해야”

사진=이미지투데이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인근 대학이 먼저 폐교하길 바랄 뿐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충원이 어려워지자 한 지방대 관계자가 토로한 말이다. 2021학년도 기준 전체 대학·전문대학의 신입생 충원율은 91.4%로 4만586명의 신입생을 뽑지 못했다. 전문대학 결원이 2만4190명, 일반대학은 1만6396명이다. 학령인구 감소세가 지속되면서 2년 뒤에는 전체 대학·전문대학의 결원 규모가 10만 명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립대 등록금 의존율 韓 54% 美 30%

16일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사립대의 재정규모는 48조8366억원으로 이 중 등록금 수입(10조426억원)이 53.7%를 차지한다. 등록금 의존도가 높기에 학생 충원난은 대학의 재정난으로 이어지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받게 된다. 특히 학교법인이 부실해지면 교직원 사학연금 등 법인이 내야할 법정부담금도 교비로 충당하게 돼 대학경쟁력 저하의 원인이 된다.

국내 4년제 일반대학 191곳 중 사립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81.6%(156개교)다. 학생 충원난이 심화될수록 문 닫는 대학은 정부로부터 경상비 지원을 못 받는 사립대 중에서 나올 공산이 크다. 실제로 2000년 이후 폐교된 대학·전문대학 16개교는 모두 사립대였다.

미국은 전체 대학(4042개교) 중 사립대가 60%(2406개교)를 차지한다. 다만 미국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30.4%로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특히 하버드대·마사추세츠공과대(MIT)·예일대 등 미국의 명문대는 재단이 운영하는 기금운영 수익률이 10% 이상에 달해 이를 통해 학생 장학금을 지원한다. 예컨대 하버드대의 경우 학생들이 내는 연간 등록금은 4만7000달러(한화 5900만원)로 비싼 편이지만, 가계소득 6만5000달러 미만 학생들은 등록금과 기숙사 비 전액을 지원받는다.

미국의 사립대가 모두 탄탄한 재정기반을 갖춘 것은 아니다. 미국도 학생 수 감소로 충원난을 겪는 대학이 늘면서 2000년 이후 764개교가 폐교됐으며, 이 중 99%(756개교)가 사립대로 조사됐다. 2020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한계대학 대응방안’의 연구 책임을 맡은 서영인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고교 졸업자 수는 2010년 316만 명에서 2017년 287만 명으로 7년 새 29만 명(9.2%) 감소했다”며 “미국에서도 학생등록률 하락에 따른 운영수입 감소를 한계대학 발생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저출산·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의 사정도 녹록지 않다. 일본의 18세 학령인구는 1992년 205만 명에서 2017년 120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일본 중앙교육심의회 추계에 따르면 2030년에는 18세 학령인구가 103만 명으로, 2040년에는 88만 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2016년 이후 미국 주별 폐교 및 합병 현황(출처: 한국교육개발원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한계대학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 그래픽=김정훈 기자)
일본도 전체 대학 중 사립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82.4%로 우리나라(81.6%)와 비슷하다. 일본 사립대의 등록금 의존율(47.3%)은 우리보다 형편이 낫지만 미국에 비하면 열악하다. 일본 사립대도 학생 충원난이 곧바로 재정난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일본의 전체 사립대(577개교) 중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은 2000년에 27.8%(131개교)였지만, 2016년에는 이 비율이 44.5%(257개교)로 상승했다. 전체 사립대 중 절반가량이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이 가운데 충원율 80% 이하에 그친 대학은 117개교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美·日, 대학 인수·합병 가능

미국·일본에서도 이처럼 충원난·재정난을 동시에 겪는 대학이 생기고 있으며, 학교법인에 대한 인수·합병이 활성화돼 있다.

미국은 교육당국이 자기자본·순이익비율로 대학별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고, 미 인증 대학에는 재정지원을 차단한다. 2017~2018년에는 미국 전체 대학(3498개교) 중 7%(235개교)가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들 대학 중 학생모집이 어려운 곳은 한계대학으로 분류되며 재건·폐교·청산 절차를 밟게 된다. 이 가운데 재건은 인수·합병이나 소유권 이전을 의미하며, 학교법인에 대한 인수·합병이 자유롭다.

예컨대 미국 버몬트 주의 사립대인 벌링턴 칼리지(Burlington College)는 재정난을 겪다 2015년 폐교됐다. 이후 지역 개발자가 캠퍼스 부지를 매입, 주택부지와 공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또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소재 윌락 칼리지(Wheelock College)는 학생 충원율 하락으로 재정손실이 커지자 2018년 보스턴대(Boston University)에 흡수·합병됐다.

일본 역시 자력으로 경영개선이 어려운 학교법인은 타 법인과의 인수·합병이 가능하다. 실제로 2005년 일본의 하기국제대학은 도쿄지방법원에 민사재생(회생)을 신청, 시오미홀딩스가 대학을 인수했다. 김미란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일본은 1989년부터 2015년까지 합병된 사립대학 수가 58개교에 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학령인구 감소로 경영난에 직면할 사립대가 속출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선 학교법인에 대한 인수·합병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의 경우 폐교 대학이 늘수록 지역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지방소멸을 가속화할 수 있어서다.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도 사립대학 간 인수·합병이 가능하지만 경영권을 포기하는 쪽에 경제적 보상을 하면 교육부가 이를 허가하지 않는다”라며 “사립대학 간 인수합병을 적극 허용하면 대학 구조조정의 효과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창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선임연구원도 “미국과 일본은 학교법인 인수·합병 시 시장의 자율성을 허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규제 일변도의 사립학교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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