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타니 다시 읽히네…역주행 베스트셀러의 비밀

김미경 기자I 2022.04.20 05:00:00

유명 석학 TV 출연에 책 판매 상승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 순위 껑충
''맨큐의 경제학'' 전파 탄뒤 판매량 급증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직장인 김나영(44)씨는 최근 TV 채널을 돌리다가 MC의 질문에 찰떡같이 답하는 메이 머스크라는 70대 여성을 발견하곤 바로 온라인 서점에서 그의 책을 주문했다. 김씨는 “상술에 잘 빠지는 편”이라면서도 “모든 대화가 가슴에 와 닿고 영감을 주더라. 그를 더 알고 싶어 당장에 주문을 완료했다. 그녀의 당당함과 용기가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알고 싶어 구입했다”고 말했다.

‘좋은 책은 결국 팔린다’는 출판계 공식은 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좋은 책을 만드는 건 ‘기본’으로 깔고 가되, 이제는 그 이상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라는 것이 출판사 편집자들의 전언이다. 편집자들은 ‘호감’이라는 감정을 ‘구매’ 행위로 이끌기 위해선 책과 관련한 크고 작은 노출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출판사는 물론 서점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다양한 SNS(소셜미디어) 채널 운영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 좋은 실례도 있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석학과 유명인들이 TV 강연자로 나서자, 관련 책들이 맹렬하게 팔려나갔다. tvN ‘월간 커넥트’, EBS 강연 시리즈 ‘위대한 수업’ 등이 출판계 효자 프로그램으로 등극했다. ‘종의 기원’ 리처드 도킨스,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등 강연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출판사 관계자는 “교과서나 전공서적에서 이름만 봐왔던 석학들이 국내 TV 방송을 탄 이후 신간이 출간되거나 해당 석학의 이전 책이 재주목 받는 등 일부 관련 서적은 베스트셀러 순위에 재진입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면서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가운데 관련 책의 인기는 TV 시청 후 받은 감동의 여운을 도서를 통해 배가시키고 더욱 풍부하게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흐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2일 tvN ‘월간 커넥트2’ 방송에서 메이 머스크(73)가 등장한 뒤 실제 메이 머스크의 책 ‘여자는 계획을 세운다’(문학동네)는 서점가에서 역주행 중이다. 2021년 문학동네가 펴낸 이 책은 메이 머스크가 tvN ‘월간 커넥트2’에 등장한 다음날 온라인 서점 예스24 에세이 부문에서 일일 베스트셀러 순위 15위에 진입했다가 6위까지 뛰어올랐다.

‘원조 센 언니’라 불리는 메이 머스크는 테슬라의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다. 부모 이전에 유수 패션지 커버를 장식하는 현역 모델이자, 임상 영양사다.

책은 싱글맘으로 살아온 메이 머스크의 내공과 깨달음, 경험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의 아들 일론 머스크는 ‘부자들의 부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낳고 기른 메이 머스크는 지독히 가난했다. 남편에게 가혹한 폭력을 당했고, 이혼 후 영양사와 모델 일을 겸하며 세 아이를 홀로 키웠다. 그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나쁜 시기도 덜 비참하고 덜 고통스러우며 덜 아리다. 이미 다 겪어봐서 그렇다. 언제 행복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좀 살아본 언니의 주옥같은 통찰과 조언은 발견이다.

‘월간 커넥트’에 출연해 재조명된 아이비리그 전설의 3대 명강의 주인공이자 ‘행복학’ 열풍을 불러온 탈 벤 샤하르는 새 책이 나온 경우다. 지난 2월 5일 ‘월간 커넥트2’에 랜선으로 출연한 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진짜 행복을 찾는 법을 전했다. 그가 진행하는 하버드대 ‘긍정심리학’과 ‘리더십 심리학’의 ‘행복’은 하버드대생의 약 20%에 이르는 1400명이 수강할 정도로 하버드대에서 인기 있는 강의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의’, 예일대 셸리 케이건 교수의 ‘죽음’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의로 불린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는 방송 후 한달보름여만에 그의 스테디셀러 ‘해피어’의 행복 공식을 강조해 발빠르게 책을 다시 펴냈다. 출판사는 “코로나19 이후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을 위해 개정판을 출간했다”고 말했다.

‘경제 교과서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경제학 원론 교재 ‘맨큐의 경제학’도 전파를 탄 뒤 ‘역주행’했다. 맨큐 교수는 3월 7~11일 EBS ‘위대한 수업’에서 ‘경제학 원론’을 총 5강에 걸쳐 강연했다. 예스24에 따르면 3월 첫 주 ‘맨큐의 경제학’ 판매량은 전주대비 200.60%나 급증했다. 책은 1987년 출간한 이래 20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국내에선 1999년 번역 초판돼 경제학도들의 교과서로 22년 넘게 읽히고 있다

예스24 관계자는 “유튜브 등 영상 매체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기 위해선 영상 등을 적절히 마케팅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물론 프로그램의 화제성과 영향력 등 미디어 효과를 본다 해도 책 자체의 매력이 떨어진다면 독자 관심도, 판매량도 급격히 떨어진다. 독자 관심을 얻기 위해선 책 퀄리티(질)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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