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총수 일가가 최근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고자 계열사 주식 2조원가량을 매각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최고세율(50%)에 최대주주 할증률 20%, 자진신고 공제율 3%까지 적용하면 최대 60%에 달한다. 국내 최고 부자 가족인 삼성 일가도 이를 감당하지 못해 주식 매각이란 초강수를 둔 셈이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가진 사람도 과세 대상
과도한 상속세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종전 2.3%에서 1.97%로 낮추는 등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향후 삼성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일자리 창출은 요원해질 것이다. 지난 12일 하루 새 삼성 계열사 주식이 2~6%대 폭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중소·중견 기업은 사정이 더 취약하다.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지분을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들린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진다” “상속세 세 번이면 경영권 넘어간다” 등의 말이 나돈다고 한다. 지난해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중기 가업 승계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94.5%)은 가업 상속의 걸림돌로 ‘막대한 조세 부담’을 꼽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미 소득세를 낸 자산에 다시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건 ‘이중과세’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상속세는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란 인식이 사회 깊숙이 뿌리 내렸다는 데 있다. 부작용을 얘기하는 사람은 ‘부자 옹호론자’로 찍히기 십상이었다. 헌법재판소도 1997년 상속세 제도에 대해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규정했다.
◇자본이득세·유산취득세 등으로 바꿔야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한국 경제(명목 GDP)는 현행 상속세의 큰 틀이 적용된 2000년 651조6340억원에서 2020년 1898조1930억원으로 3배나 커졌다. 소득 투명성도 크게 향상됐다.
더욱이 상속세는 더는 ‘있는 자’의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면서 집 한 채 가진 사람들조차 상속세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부동산 정보업체 경제만랩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분양된 서울 아파트 중 지난달에 실거래가 이뤄진 10개 단지를 조사한 결과 이들 아파트 실거래 가격은 분양가 대비 평균 128.3%(평균 10억2000만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전 재산 10억원 미만이면 일괄공제(5억원)·배우자상속공제(5억원)로 세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이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상속받은 보유 자산을 팔 때까지 세 부담이 미뤄지는 ‘자본이득세’나 상속인 각자가 실제로 나눠 받는 재산 각각에 과표 구간·세율을 적용하는 ‘유산 취득세’ 등의 방식으로 상속세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