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소리에 남다른 재주를 보이던 안숙선 명창은 9살 때 가야금 명인이었던 이모에게 가야금을 배우며 국악에 입문했다. 이후 ‘남원국악원’에 들어가 본격적인 국악과 소리를 배웠고, 남원춘향여성농악국악단에 들어가 전국 순회공연을 하며 소리꾼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한 안 명창은 두 스승 만정 김소희(1917~1995)와 향사 박귀희(1921~1993)를 만나게 된다. 먼저 1970년 판소리 문화재 1호인 김소희 아래에서 소리를 배웠다. 이후 1973년 양한 예능을 갖추기 위해 안 명창은 가야금 명인인 박귀희를 찾아갔다. 다른 대가의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지만 박귀희는 흔쾌히 안 명창에게 가야금 병창을 전수했다.
두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안 명창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 타고난 좋은 성음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역을 도맡으며 일약 창극 명인으로 자리잡았다. 안 명창은 타고난 소리 성음과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 뛰어난 연기력, 과하지도 지나치지 않은 감정 표현법과 세련된 무대 매너까지 겸비해 관객들에게 최고의 소리꾼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후 안 명창은 1986년 판소리 5바탕(춘향가·흥보가·심청가·적벽가·수궁가)을 완창하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1997년에 중요무형문화재 23호로 지정된 후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등 굵직한 수장 자리도 줄줄이 역임했다.
안 명창은 누구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과 교류하며 판소리 대중화에 이바지했다. 1995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독일의 재즈그룹 래드선이 협연한 음반 ‘난장. 뉴호라이즌’ 속 ‘토끼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국악 장단에 묵직한 재즈 음악에 안 명창이 판소리 ‘수궁가’ 중 토끼를 사로잡는 대목을 부른 ‘토끼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한국창작음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이후에도 안 명창은 K팝,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과 교류하는 무대를 선보여왔다.
안숙선 명창은 2000년부터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예술원 성악과 교수로 지내며 2013년 퇴임 때까지 후학 양성에도 앞장서며 국악의 보전과 발전, 전파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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