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70년 가까이를 따로 살면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말하는 것이 비단 낙지와 오징어 뿐일까요. 남북이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만이라도 풀어보고자 북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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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의 기자회견 때는 엉뚱한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바로 김예령 경기방송 기자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질문 태도가 논란이 됐는데요, 그 질문의 깊이는 차치하고,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 모습이 눈꼴 시렸겠지만 문 대통령을 비토하는 세력에서는 그 공격적인 질문이 비호할만 했을 겁니다. 요는, 태도는 정쟁의 대상이 될 뿐이란 거죠.
독재자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닌가요?”라고 질문한 기자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는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비호한 사실을 알고서도 그를 “돼지 같은”이라고 수식하며 면전에서 비꼬았습니다. 그 때 카다피가 지었을 표정은 우리가 그를 조망하는 한 근거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기자회견을 지켜본 기자도 그 ‘무례한(이라 여겨지는)’ 질문 때 문 대통령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때로는 질문에 대한 답보다 질문에 반응하는 태도가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첫 세 번의 답변을 하는 동안 두 차례나 한숨을 쉬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독자가 있을까요?
문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을 ‘위원장’이라는 호칭없이 여러 차례 “김정은”이라고도 했습니다. 2018년 첫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에 대한 질문을 받고도 북한이라고만 지칭하던 문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면 개인적으로는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사이가 그 만큼 돈독해졌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때로는 ‘계급장 뗀’ 질문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죠.
김 위원장의 신년사와 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지켜보면 두 지도자의 대화 방식은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질의응답’입니다. 두 지도자 모두 30여분간 ‘정견 발표’의 시간을 가졌지만, 김 위원장과 다르게 문 대통령은 86분이나 질문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80분으로 예고했던 질답 시간을 문 대통령이 임의로 늘여 진행했음에도 현장에서 손을 든 기자는 줄지 않았습니다.
90여분을 추가 질문을 하고도 국정 철학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30분에 불과한 김 위원장의 신년사만을 듣고 이를 분석해야 하는 북한학 석학들이나, 이들의 분석을 포함해 기사화시켜야 하는 통일부 출입 기자들의 고충도 간접적으로마나 이해가 되실 겁니다.
김 위원장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김 위원장이 그에 대한 답을 했다면? 설령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겠다’고만 해도 그 자체로 기사화될 가치는 충분할 겁니다. 김 위원장은 그간 자신의 생각을 말해오기만 했지 누군가의 질문을 받아 대답한 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야경 시찰을 나섰을 때도 김 위원장은 자신을 알아보는 인파에는 손을 흔들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습니다.
전술한 팔라치는 중국의 지도자 덩사오핑과 인터뷰를 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아마도 북한 지도자와의 인터뷰도 원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자가 접한 북측 고위급 인사들은 ‘질문’에 인색합니다. 지난 6월 싱가포르 북중 정상회담 이후 국내 매체가 김 위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북측은 그저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직접 만났던 북측 고위급 인사들 중에서도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만이 “다음에 합시다” 정도의 대꾸(?)를 해줬을 뿐,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질문 자체를 안 듣는 식으로 일관했습니다. “남측에서 천안함 폭침 주범이라는 사람이 저 김영철”이라고 해놓고도 후일 남측 취재진의 질문을 회피한 그입니다. 최선희, 최강일, 김성혜 등등이야 말해야 무엇할까요.
그런데 최근 김 위원장의 2019년 첫 방중과 관련해 재미있는 리포트를 접했습니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의 분석이었는데요, 중국 언론이 이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비중 있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죠. 신화통신이나 CCTV 모두 김 위원장의 네 번째 방중은 크게 의미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양국 관계가 돈독해졌다는 해석이었죠.
북한은 어땠을까요? 당연하게도 김 위원장의 방중 소식이 늘 1면이었습니다. 흡사 1980년대 ‘땡전뉴스’를 방불케하죠. 그들 입장에서는 김 위원장의 방중을 서너번째 뉴스로 전하는 중국의 언론이 예의 없다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예의라는 건 불변의 가치는 아니니까요.
돌고돌아 우리에게 팔라치 같은 기자가 있어서 김정은 위원장과 독대할 기회가 생겼다면 어떨까요? 영화 ‘공작’의 흑금성(황정민 분)처럼요. 그가 김 위원장에게 “당신은 독재자가 아닙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그를 예의가 없다고 비판할까요? 그 때 ‘김정은’은 무어라고 답할지 그의 입을 주목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