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후 70년 가까이를 따로 살면서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는 것이 비단 낙지와 오징어 뿐일까요. 남북이 서로에게 가질 수 있는 사소한 오해만이라도 풀어보고자 북한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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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0대 후반을 달리고 있는 기자는, 생일이 그렇게 큰 이벤트로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돌아오는 8일 생일을 맞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기자와 비슷한 30대라는 점에서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듭니다. 김 위원장이 태어난 해를 1984년으로 보고 있는 우리 정부 입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이틀 뒤 만 35세가 됩니다.
어느 사회나 그렇지만 북한 역시 생일에 대한 의미부여가 확실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력하죠.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15일과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2월16일 광명성절은 북한 최대의 명절입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태어난 1월8일은 2019년 올해 발행된 북한 달력에도 그저 평일일 뿐입니다.
어째서일까요? 김 위원장은 지난 2011년 집권한 이후 줄곧 신격화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찬양 구호를 북한 전역에 뿌리고 주민 생활총화에서는 김 위원장 우상숭배를 사상교육의 중심으로 뒀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일을 맞아 주민들에게 크고 작은 선물을 지급하는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우상화 과정에서 핵심이 될 수 있는 생일에 공개행사를 하지 않는다? 의구심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김 위원장이 생일 자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 등 북한 선전매체를 보면 김 위원장이 100세를 맞은 북한 주민에게 생일상을 보냈다는 보도가 종종 나옵니다. 상대적 우호국 정상들의 생일에 맞춰 축전도 보내고요. 집권 이후 해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생일에 맞춰 군 장성 승진인사를 단행하기도 했죠.
무엇보다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이 자신의 생일에 미국 NBA 농구선수 출신인 데니스 로드먼을 평양으로 초청한 것에서도 이러한 성향이 잘 드러납니다. 한 때 전세계에서 리바운드를 가장 잘했던 선수와 보내는 하루. 농구를 좋아하는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아닐까요.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로드먼의 방북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 김 위원장의 생일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계기이기도 합니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생일에 국가적인 잔치를 벌이지 않는 데 대해서는 이런저런 추측만 있을 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2019년 신년사에서 예년과 다르게 김일정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 언급을 유의미하게 줄였다는 측면에서 마음속으로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 위원장에게 정치적 라이벌은 역설적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일테니까요.
실제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은 각각 62세가 되던 1974년과 40세가 되던 1980년부터 자신의 생일을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이제 만 35세가 된 젊은 지도자인 김 위원장에게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은 셈이죠.
그보다 김 위원장이 올해 생일을 맞아 바라마지 않은 선물이 있을 것입니다. 바로 중국 정부로부터의 축전이 그것입니다. 중국은 2015년 김 위원장에게 축전을 보낸 이후 3년간 축전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중 관계가 악화일로였던 시기죠.
올해만 3번이나 중국을 찾았던 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게 생일 축하 서한을 보냈습니다. 무려 5년만에 보내는 생일 축하 메시지입니다. 이제 자신이 받을 차례가 됐으니 은근한 기대감도 있겠죠. 앞으로 북미 대화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중국의 지원이 필수적일테니까요.
여담으로 김 위원장은 나이 ‘한 살’을 재수(?)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우리와 다르게 1985년부터 김일성 주석의 지침에 맞춰 국가적으로 만 나이를 쓰도록 강제했습니다. 1984년에 한국식 나이로 한 살이었던 김 위원장은 이듬해 만 나이로 다시 한 살이 됐을 가능성이 짙습니다.
물론, 북한도 일상생활에서는 우리처럼 ‘한국식 나이’를 오래도록 썼지만 최근 젊은 세대엔 만 나이가 정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지난해 스포츠 교류를 통해 방남한 선수들은 모두 만 나이를 썼습니다. 북한마저 만 나이를 쓰는 사회가 되면서 전세계에서 ‘한국식’으로 나이는 세는 건 우리뿐이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