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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신약을 출시한 국내 한 제약사 관계자는 국산신약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산신약에 대해 제대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아 개발에 성공해도 매출이 미미하고, 이를 다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신약을 개발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제약사에 신약개발 동기를 부여하고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려면 자체 개발 신약에 대한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동아에스티가 지난 2016년 1월 국산신약 24호로 승인받은 항생제 ‘시벡스트로’는 지난 1일 국내 건강보험 목록에서 삭제됐다. 시벡스트로는 지난 2014년 국산신약 두 번째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하고 이듬해 3월 유럽 의약품청(EMA) 판매허가를 받아 현지 판매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출시를 못한 것이다. 이는 국내에서 보건당국이 시벡스트로(주사제) 가격을 미국 약 312달러(약 35만원)의 3분의 1도 못미치는 12만 8230원에 책정했기 때문에 출시를 미루다가 결국 포기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동아에스티는 시벡스트로가 폐렴에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지난 2분기에 확인, 관련 가치를 더해 약값을 다시 인정받도록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CJ헬스케어가 개발해 지난 7월 허가받은 국산신약 30호 ‘케이캡’도 지난달 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조건부 비급여’ 판정을 받았다. 조건부 비급여는 신약의 효과는 인정하지만, 제약사의 신청 가격이 고가여서 정부안과 맞지 않을 경우 내리는 판정이다. CJ헬스케어가 신청한 약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은 것이다.
케이캡을 대체할 만한 비슷한 효능의 기존 약들이 있어 높은 가격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 급평위의 시각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CJ헬스케어는 케이캡의 약가 협상에 대한 재평가를 마무리해야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갈 수 있는 처지가 됐다.
일동제약이 개발한 국산신약 28호 ‘베시보’도 기존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보다 약 30% 저렴한 가격을 받았다. 또 기존 제품에서 베시보로 변경 처방할 때는 보험급여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단서도 달렸다. 기존 제품의 내성 문제를 개선하는 등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했지만 시장에 좀처럼 진입하기 어려운 숙제를 떠안은 것이다. 이에 의약품 통계전문 유비스트에 따르면 베시보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1억 6140만원에 머물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지난 2016년 7월부터 국산신약에 혜택을 주던 ‘혁신신약 약가우대 제도’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해당 제도가 차별적이라는 미국 측 지적에 따라 국산신약에 주던 우대 조항들을 모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정부가 승인하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생산하고, 국내에서 세계 최초로 허가받은 신약이며, 국내에서 임상 1상 이상 수행한 제품의 경우 약가우대 혜택을 줬다. 그러나 지난달 14일 심평원이 행정 예고한 개정안에 따르면 이 같은 조항은 없애고 미국 FDA의 획기적의약품지정(BTS) 또는 EMA의 신속심사 적용 대상 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변경했다. 이에 국내 제약사들의 반발은 커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국내 보건당국이 국산신약의 가치를 등한시하면, 국내 기업들도 우리나라에서 신약을 출시하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해외시장에 진출한 국산신약 가격은 통상 우리나라에서의 가격도 참고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100원에 파는 약을 해외 현지에서 500원으로 쳐주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SK바이오팜은 지난달 FDA에 뇌전증 치료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판매 허가를 신청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출시 계획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SK바이오팜은 국내 약가정책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국산신약이 국내에서 점차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 경우 국내에서 정작 출시 못하는 사례는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장우순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상무는 “현재 약가제도에서는 신약개발에 성공해도 부가가치 창출은 물론 개발원가를 회수하는 것에만 평균 10년이 걸린다”며 “개발신약 효능을 높이는 추가 임상과 글로벌 진출을 위한 시설 확충에 필요한 추가 시설투자를 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또 장 상무는 “국산신약의 글로벌 진출은 국내의 사용 경험 데이터와 자본 확대를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낮은 약가를 포함한 국내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은 글로벌 진출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