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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킹맘]애 안키우면 모진 엄마, 집에 있으면 무능력 아빠

김보영 기자I 2018.07.27 05:30:00

"아이는 엄마가" 고정관념이 아빠육아휴직 걸림돌
성인 10명 중 4명 "여성은 요리·남성은 TV 시청"
육아휴직 후 아내는 독박육아 남편은 그냥 휴직
전문가들 "제도 강제·인식 개선 활동 동시에 이뤄져야"

서울시가 지난 4월 4일 보육 제도나 청년수당 등 시 정책을 홍보하는 홍보물에서 성 역할을 고착화한다는 지적을 받고 뒤늦게 교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은 문제가 된 서울시 시정 홍보 포스터 2장.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3살 딸과 21개월 아들을 키우는 회사원 강은지(가명·35·여)씨는 최근 복직했다. 둘째의 잦은 병치레 탓에 직장과 육아의 병행이 점점 어려워졌지만 육아휴직 2년을 모두 사용해 방법이 없었다. 보다 못한 강씨의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섰지만 시어머니가 반대하고 나선 탓에 이도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씨의 시어머니는 “육아는 내가 도와줄 테니 남편은 회사에 전념하게 하라. 남자가 집에서 애를 보고 있으면 사회에서 무시당한다”고 강씨를 나무랐다.

남성육아휴직 확산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성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이다. 정부가 통상적으로 아빠가 많이 사용하는 두번째 육아휴직자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아빠육아휴직 보너스제’를 도입, 육아휴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완화했다. 그럼에도 불구 적지 않은 아빠들이 여전히 ‘아빠는 회사일 엄마는 집안일’이라는 벽에 갇혀 아내에게 육아와 집안일을 떠넘기고 있다.

◇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고정관념에 좌절

“부모님 세대인 직장 상사들은 남성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해요. 회사에서 남자직원이 육아휴직을 냈다고 하면 ‘아예 애도 낳지 그러냐’, ‘처자식은 아내가 대신 먹여 살리냐’고 조롱하더군요 누가 이런 비웃음을 들으면서까지 육아휴직을 내고 싶겠어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워킹대디 김선우(34)씨)

“지난 추석연휴에 늦게 가게 마감을 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에서 시댁에 갔어요. 제가 피곤해 하는 모습에 남편이 설겆이를 하겠다고 나서니 시어머니가 기필코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뺏어 제게 넘기더군요. 가게문을 닫기 힘든 저 대신 회사원인 남편이 육아휴직을 냈을 때는 시아버지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었어요.” (커피전문점을 운영하는 워킹맘 배진숙(가명·32)씨)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뿌리가 깊고 질기다. 여성가족부가 20~30대 성인 1000명과 청소년(중2~고2) 500명을 대상으로 ‘양성평등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 응답자 10명 중 4명(40.2%)은 여성(어머니)의 집안 활동으로 떠오르는 행위로 △주방에서 요리를 한다를 꼽았고, △자녀를 교육하거나 돌본다(20.2%) △주방에서 설거지를 한다(12.8%)가 뒤를 이었다.

반면 떠오르는 남성(아버지)의 집안 활동으로는 △TV를 본다(34.6%) △거실 소파에 눕거나 앉아있다(20.4%) 등을 꼽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녀가 느끼는 불평등에 대한 인식도 달랐다. 성인 여성은 49.6%가 가정 내 양성이 불평등하다고 인식한 반면 성인 남성 응답자는 25.1%에 그쳤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아내는 독박 육아휴직 남편은 그냥 휴직

3세 아들을 둔 워킹캄 신연지(가명·35)씨는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중이지만 불만이 많다.

그는 “주변에서는 남편이 6개월 육아휴직을 사용했다는 소리를 듣고 부러워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남편에게 ‘육아’는 아이와 야외로 나가서 놀아주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육아휴직을 썼을 때는 집에서 손 하나 까딱 않던 남편이 지금은 수시로 아이와 집안일을 떠넘긴다. 우는 아이 달래기,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는 전부 내 몫”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돌보겠다며 육아휴직을 낸 용감한 아빠들도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는 쉽지 않다. “아이가 엄마를 찾는다”는 등의 이유로 ‘육아 전담’ 아닌 ‘육아 지원’으로 역할을 스스로 제한한다.

실제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육아휴직을 경험한 20~49세 남녀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육아휴직 당시)배우자가 양육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남성은 2%에 그친 반면 여성 응답자는 27%나 됐다. ‘배우자가 가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남성은 1.5%, 여성은 26.5%였다.

배우자에 대한 양육 참여 불만족도는 여성이 35.5%로 남성(3.5%)의 10배 이상 높았고, 가사 참여 불만족도도 여성 37%, 남성 5.5%로 큰 격차를 보였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배우자와 갈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3.3%였는데, 남성은 갈등 이유로 ‘양육방식 이견’(46.9%)를 가장 많이 꼽은 반면, 여성은 절반 이상이 ‘배우자가 양육을 나에게 전적으로 부담시켜서’(63.3%)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 각각에 강요하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해소하려는 노력 없이 육아휴직 등 일·가정 양립 제도의 정착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남성이 육아나 가사를 여성만큼 충분히 수행할 수 있겠느냐는 사회적 인식과 경제활동에 전념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문제”라며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성의 육아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존 제도들이 가부장제의 성역할 인식 아래 어떻게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는지 조명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이 육아를 ‘도와주는 것’에 만족하는 것을 넘어 남성도 육아를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아빠 육아휴직을 의무화하는 등 정부에서 제도적 강제와 함께 일상에 뿌리박힌 성역할 고정관념과 인식을 바꾸는 문화적 계도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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