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는 소득 계층과 일부 대기업을 대상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이를 통해 마련된 재원으로 사회취약계층, 영세기업 지원에 활용하면 사회통합과 상생협력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소득재분배에 방점을 찍으면서 세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개세주의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개세주의란 ‘모든 국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세 원칙이다.
◇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논의도 못해
이번 세법개정안에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 방안이 결국 담기지 않은 것이 대표적이다. 2015년 기준 근로소득세 면세자는 803만4000명으로 전체 납세자의 절반에 가까운 46.5%를 차지한다.
조세 원칙을 세우기 위해선 부자 증세에 앞서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법개정에 앞서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주최한 ‘소득세 공제제도 개선방안’ 공청회에서는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이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면세자 축소방안은 아예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동연 부총리는 “자연적으로 소득이 늘어나는 계층이 있어서 면세자 비율이 자동적으로 축소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것을 보면서 어떻게 할지 검토해봐야 한다. 조세당국이 가지고 있는 국민개세주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도 정부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달 28일 “종교인 과세는 할 준비는 갖춰져 있는데 구체적으로 할지 여부와 만약에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 할지는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실무적인 준비는 문제가 없지만 시행 여부와 방식 모두 불투명한 셈이다.
앞서 국회는 2015년 12월 본회의에서 목사·스님 등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당시 정부는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종교인 23만명 중 4만6000명(20%)이 과세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했다. 과세 시점은 2018년 1월로 2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가 ‘고민 중’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예정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직장인들은 돈을 버는 즉시 세금을 내는데 종교인 과세만 유독 수십 년간 준비하는 건 형평성이 맞지 않다”며 “국민개세주의라는 세법 원리·원칙에 따라 당연히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 지방선거 의식해 소수 부자만 증세
정부가 근로소득세 면세자 축소를 보류하고 종교인 과세에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면세자 축소를 추진할 경우 ‘서민 증세’라는 부담에 직면하게 되고, 종교인 과세를 예정대로 시행하면 종교인들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이런 분위기는 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이번 세법개정안에 반영됐다는 얘기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권 하반기로 갈수록 문재인 대통령의 현 지지율이 유지될 수 없다”며 “종교인 과세로 종교인 이탈까지 생기면 정권으로선 골치 아픈 일이 되기 때문에 (여권이) 정치적인 파장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다가 3개월도 안 돼 ‘부자 증세’에 나섰듯 내년 지방선거 이후엔 공약 재원 마련을 위해 ‘서민 증세’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