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총장과의 대화]강성모 KAIST 총장 “소통으로 구성원 장점 찾는 게 리더"

신하영 기자I 2016.04.25 06:30:00

심판자보다 조력자···헌신의 리더십으로 세계대학 43위 성과
“논문 질이 중요···연구자에게 시간 줘야 노벨과학상 배출”
“세종시 의과학대학원 추진···의학·공학 융합연구에 주력”

강성모 총장은 “구성원들의 장점을 발휘토록 돕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사진= 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구성원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 이를 발휘토록 하는 게 리더의 역할입니다.”

대전 강성모 KAIST 총장은 ‘헌신의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을 강조한다. 전임교수만 600명이 넘는 방대한 조직에서 개개인의 장점을 찾아 적절한 역할을 부여하기란 쉽지 않다. 강 총장은 구성원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문제가 있으면 같이 풀어가는 방식을 선택했다.

“요즘 외부 사람을 만나거나 내부 교수들을 만나도 ‘KAIST가 왜 이렇게 조용하냐’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2013년 2월 강 총장이 취임하기 전만 해도 KAIST는 내부 갈등으로 잠잠할 날이 없었다. 전임자인 서남표 전 총장이 경쟁력을 제고한다는 명분 아래 내부 조율 없이 개혁을 밀어붙인 영향이 컸다.

서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교수 정년보장(Tenure·테뉴어) 심사를 강화해 2008년 한해에만 정년보장 신청 교수 38명 가운데 15명(39.5%)을 탈락시켰다. 이 같은 개혁 드라이브는 학생사회로 확대돼 평점 3.0에 미달한 학생은 수업료를 납부토록 했다. KAIST는 정부 지원 덕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비 부담없이 학교를 다닌다. 2011년 한 해에만 4명의 KAIST 학생이 성적부담 등을 이유로 자살하면서 사회 문제로까지 부상했다. 학내 반발이 거세지자 서 총장은 두번째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KAIST 총장 임기는 4년이다.

2013년 강 총장 취임 후 교수사회 내 갈등은 여전했다. 과거 서 총장 개혁정책 지지여부에 따라 갈라섰던 교수들 간의 공방이 계속됐다.

“제가 새로 총장으로 부임하자 학내 문제를 들고 와 시시비비를 가려달라는 요구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요구를 거부했지요. 과거의 일을 두고 잘했냐 잘못했냐를 따져봤자 갈등의 골만 깊어집니다. KAIST는 국고로 운영되는 대학입니다. 과거의 일에 얽매여 있기에는 해야 할일이 굉장히 많습니다.”

◇ 3년간 학교 안정화···세계대학순위 43위로 상승

이때 강 총장이 들고 나온 카드가 ‘서번트 리더십’이다. 강 총장은 교수를 평가해 성적을 매기는 ‘심판자’가 아닌 문제 해결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미국의 AT&T 벨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할 때 성과를 내지 못하는 연구원에게 ‘왜 빨리 못하느냐’며 다그치기보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도와주는 것이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뭐가 문제이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 보면 이심전심이 생기게 됩니다. 총장이 자기를 이해해준다는 생각이 들면 교수·직원은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지요. 이런 노력이 쌓이면 구성원 개개인의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강 총장 취임 이래 KAIST는 안정을 되찾았다. 갈등이나 잡음이 잠잠해지면서 연구·교육에 집중할 토대가 마련됐다. KAIST는 지난해 9월 영국의 대학평가기관인 QS(Quacquarelli Symonds)사가 발표한 세계대학순위에서 공학기술분야 13위, 종합 43위를 달성했다. 종합순위는 2006년 198위를 기록한 뒤 10년 만에 155계단이나 상승한 성과다.

◇ “교수 개개인 강점 살려야”···평가제도 개선 검토

KAIST는 교수업적평가제도의 개선을 검토 중이다. 교육·연구·사회봉사 등 3개로 구성된 평가영역에 ‘산학협력’을 포함, 4개 분야로 확대하고 교수 본인의 선택에 따라 영역별 비중을 일부 조정토록 하는 방안이다.

“교육은 잘하지만 연구실적은 그에 비해 낮은 교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연구성과는 뛰어나지만 강의평가는 저조한 교수가 있습니다. 훌륭한 대학은 교수 개개인의 장점을 살려줘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교육·연구·사회봉사 평가영역별 비중이 각각 30%·40%·30%로 고정돼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평가영역에 기업 등 민간과의 산학협력 성과를 포함하는 한편 교수가 영역별 비중 일부를 조정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교수 본인이 가진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맞춤형 평가제도’를 도입하겠다는 얘기입니다.”

◇ “학생 교육, 중요한 연구주제 찾는 능력 키워줘야”

그에게 국내에서 과학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올 가능성에 대해 묻자 ‘시간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논문의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풍토를 바꿔야 합니다. 노벨상은 학계의 오래된 난제를 풀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학자에게 주어집니다. 정부에서는 연구비를 지원한 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 끊임없이 실적을 요구합니다. 밥이 아직 안 됐는데도 자꾸 밥솥을 열어 결국 밥을 설익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에서는 10년에 한 편 꼴로 논문을 쓰면서도 주옥같은 성과를 내는 교수가 있고 30년간 한 분야만 파서 결국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자도 있습니다. 풀기 어려운 난제에 천착하는 연구자에게 시간을 주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세계적 연구성과는 원천기술, 특허 등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진다. 강 총장은 고차원적인 연구주제를 찾아내 이를 풀려는 노력(연구)이 노벨상 수상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교육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자에게는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입학 시험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정작 좋은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화두를 찾지 못합니다. 이를 찾도록 만드는 것이 교육입니다. 중요한 문제를 찾고 해법에 도전하는 게 노벨상의 시작입니다.”

◇ “강의내용 예습하고 수업시간엔 토론해야”

강 총장은 2013년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 방식을 도입했다. KAIST 내에서는 ‘에듀케이션(Education) 3.0’ 프로그램이라고 불린다. 학생들은 수업 전 미리 교수의 강의내용을 예습해온다. 수업시간에는 교수에게 예습중 이해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다른 학생과 토론을 벌인다. 교육효과가 크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기준 전체 과목 중 약 5%(119개 과목)에서 이 같은 수업방식을 채택했다.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강 총장은 남은 기간 세종시 융합의과학대학원 설립에 주력할 생각이다. 임상진료와 연구능력을 겸비한 의사와 헬스케어 융합연구를 수행할 의공학 전문가 양성이 목표다. 의학과 공학을 접목한 융합연구도 의과학대학원이 주력할 분야다. 내년 착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2020년까지 총 77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확산되면서 의료산업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정교한 수술 작업은 로봇이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의료분야에서도 KAIST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충남대가 세종시에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짓고 있는데 최근 서로 협력하기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앞으로는 의과학과 공학이 접목될 겁니다. KAIST는 이 분야에서 융합연구에 주력,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겠습니다.”

강성모 총장은...

1945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1968년 경신고를 졸업하고 육사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시력이 나빠 낙방한 뒤 공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군 복무 중 전기공학 관련 교재를 접하고 흥미를 느껴 제대 후 연세대 전기전자과에 입학했다. 4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UC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5년 미국 럿거스대 교수로 임용됐다. 1977년에는 미국 최대 민간연구소인 AT&T 벨연구소로 이직, 38세의 젊은 나이에 선임 연구원에 올랐다. 1985년 대학으로 복귀해 일리노이주립대 교수와 UC산타크루즈 공대학장을 거쳐 2007년 한국인 최초로 UC머시스대 총장에 올랐다. UC산타크루즈 특훈석좌교수를 거쳐 2013년 2월 KAIST 총장으로 부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