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재벌은 제약사업에서 맥을 못출까?

천승현 기자I 2015.05.27 03:00:00

단기성과 급급 대기업 계열 의약품 시장서 고전·철수
삼성·LG·SK 등 왕성한 R&D 투자 업체들만 가능성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의약품 산업은 다른 제조업에 비해 시장 적응이 까다롭다. 국민 건강과 밀접한 산업이라는 이유로 규제 장벽이 높을 뿐더러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도 쉽지 않다.

1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제약사가 내놓은 신약은 25개에 불과하고 아직 글로벌시장에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제품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유한양행이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돌파했지만 글로벌 1위 제약사 노바티스(약 60조원)와 비교하면 초라하기만 한 수준이다.

◇단기성과 목맨 대기업들 의약품 시장서 고전

지난 1980년대 이후 대기업들이 속속 제약산업에 진출했지만 괄목할만한 성과를 낸 업체는 찾기 힘들다.

최근 시장 철수를 선언한 드림파마와 태평양제약은 시장에서도 외면을 받는 시점에 매각이 이뤄졌다. 드림파마는 2009년 17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2013년 900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태평양제약 역시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글로벌 시장보다는 내수 시장에만 안주하다 리베이트 규제강화 등 환경 변화로 실적이 부진하자 사업을 접었다.

공교롭게도 드림파마와 태평양제약 모두 불법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되면서 곤혹을 치른 경험이 있다.

드림파마는 지난 2011년 800억원대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전 대표이사가 구속되기도 했다. 태평양제약은 지난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52억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돼 7억6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태평양제약과 드림파마의 매각은 직원들의 고용 불안으로 이어졌다. 태평양제약의 경우 한독이 150여명의 영업사원을 그대로 승계했지만 사업 철수직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며 1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드림파마는 유사한 사업을 영위하는 근화제약과 통합되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근화제약도 드림파마와 마찬가지로 제네릭 중심의 영업을 한다. 근화제약과 드림파마 모두 희망퇴직을 접수받고 있지만 지원자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연도별 드림파마(왼쪽)·태평양제약 매출 추이(단위: 억원)
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이라는 타이틀로 시장에 진출했지만 단기성과를 내기 위해 제네릭 영업에 치중하다 리베이트로 그룹 이미지에 흠집이 나자 시장에서 발을 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CJ제일제당에서 독립 법인으로 분리된 CJ헬스케어 역시 아직 대기업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984년 유풍제약, 2006년 한일약품을 각각 인수한 CJ헬스케어는 제네릭 중심의 영업을 펼치고 있다. CJ헬스케어 역시 2014년 43억원 규모의 리베이트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CJ헬스케어는 숙취해소음료 ‘컨디션’을 캐시카우로 활용해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중장기 목표를 설정한 상태다. 2006년 간판을 단 코오롱생명과학도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대기업 투자 소홀로 국내제약 영세성 부추겨

업계에서는 “대기업들이 제약산업 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린다.

신약 1개를 개발하려면 막대한 자금과 함께 10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데도 눈 앞의 실적에만 급급하다보니 연구·개발(R&D) 노하우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의약품 허가와 보험약가와 같은 규제 장벽도 높고 의사와 약사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 영업행위도 대기업들 입장에선 낯설 수 밖에 없다.

2013년 완제의약품 생산규모별 업체 현황(자료: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본력에서 앞선 대기업들이 국내 의약품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면서 제약업계 전체가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제약협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기준 의약품 생산실적이 있는 282곳 중 생산실적이 1000억원 이상인 업체는 40곳에 그친다. 100억원 미만인 업체는 절반에 가까운 132곳에 이른다.

매출액의 10% 이상을 R&D 비용으로 투입하는 업체는 한미약품(128940), LG생명과학(068870), 동아에스티(170900), 종근당(185750), 유나이티드제약(033270) 등에 불과하다. 로슈, 노바티스 등이 연간 10조원 이상을 R&D 분야에 투입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인색한 R&D 투자는 제품 경쟁력 악화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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