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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지방 중소도시]길 닦는데 총사업비의 80% 써‥정비방식 늘려야

김동욱 기자I 2013.10.22 07:10:00

중소도시 정비하려면 주거환경개선사업 유일한데
사업비 80%가 도로정비‥복지시설 건설 0.4% 그쳐
“지방 중소도시 종합대책 마련해야”

▲ 공주시 중학동은 한때 소방차 진입이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좁고 주차장이 턱없이 부족해 주차문제가 심각했다. 현재는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새 길이 뚫리고 빈집 터는 공동주차장으로 바뀌면서 주거환경이 이전보다 개선됐다. 그러나 기반시설 위주의 사업 추진으로 정작 집을 고쳐 사는 비율은 낮아 주거의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김동욱 기자
[충남 공주=이데일리 김동욱 기자] 충남 공주시는 지난 2000년부터 올해까지 정부의 예산을 지원받아 1·2단계 주거 환경 개선사업을 마쳤다. 총 407억원을 정부에서 지원받았다. 나머지 50%(충청남도 20%, 공주시 30%)는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매칭 방식으로 지원이 이뤄졌다. 지난 18일 찾은 공주시 중학동. 한 때 노후주택 비율이 66%에 이를 정도로 공주시에서도 대표적인 슬럼 지역으로 꼽힌 곳이다. 도로가 좁아 소방차가 진입하는 것은 물론 주차장도 부족해 집 앞은 매일같이 주차전쟁이 벌어졌다.

1·2단계 사업을 통해 좁은 도로가 넓혀지고 새 길이 나면서 주거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빈 집은 시가 직접 사들여 헐고 공용주차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50년 넘게 산 박순화(76)씨는 “5년 전과 비교하면 동네가 몰라보게 달라졌다”며 “예전에는 도로가 좁아 집을 짓는 것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새 길이 난 곳 일부는 올해 초부터 도시가스가 공급됐다. 신축된 집도 더러 눈에 띄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정작 집을 고쳐 쓴 경우는 많지 않았다. 소득 수준이 낮아 주민들이 주택 개량에 적극적이지 않은 데다 정부에서 저리 융자를 받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해 아는 주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노후주택이 철거되는 과정에서 기존에 살던 세입자들의 반발도 컸다. 주민 임재철(67)씨는 “주민 대부분 주거 환경 개선사업을 도로 확장과 주차장 사업으로 알고 있다”며 “시에서도 주택 개량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 도로만 짓는 주거환경 개선사업

공주시나 군산시처럼 지방 중소도시가 정비사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에 따라 총 3가지다.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주거 환경 개선사업과 민간 주도로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 등이다. 최근 정부가 소규모 구역을 정비할 수 있는 가로수 정비사업과 주거 환경 관리사업 등을 새로 도입했지만 정작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아직 시행된 적은 없다. 사실상 지방 중소도시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주거 환경 개선사업 뿐이다.

주거 환경 개선사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된다. 공공이 도로 등 기반시설을 설치하면 주민 스스로 주택을 고쳐 쓰는 현지 개량방식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사업 시행자가 주택을 모두 수용한 뒤 아파트를 짓는 공동주택방식 등이다. 그러나 공동주택방식은 LH의 재정난으로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이 사업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이 30% 미만에 불과해 사업 효과도 떨어진다.

사실상 중소도시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현지 개량방식으로 제한적인데, 이 사업 역시 전체 사업비의 80%가 도로 정비에 쓰일 정도로 도로사업 비중이 높다. 보육시설 등 복지시설 건설을 위해 사용된 금액은 전체의 0.4%에 그친다. 정책 취지와 달리 주민이 직접 집을 고쳐 쓴 경우는 20%에 불과했다. 사실상 도로만 짓다 끝난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2단계 사업 결과 불량 도로율은 27.3% 줄었지만 정작 노후 건축물 비율의 감소 폭은 6.3%에 그쳤다. 공주시 관계자는 “정부에서도 명확한 방침을 제시하지 않다보니 사업 방식을 다양화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장기 로드맵 마련해야”

이처럼 정부의 주거환경 개선사업이 큰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에 대한 기본계획이 없는 데다 사업도 단순 기반시설 건설에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 특성에 부합하도록 정비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기반시설을 정비한 뒤 돈을 빌려줘 주택 개량을 유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방 중소도시에 맞는 종합적인 주거 정비계획도 새로 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지방 중소도시는 대도시와 달리 정비기본계획을 의무적으로 수립할 필요가 없다. 2010년 기준 중소도시 중 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된 곳은 천안시 등 5개 지자체에 불과하다. 정부 내에서도 사업 전담 부서가 명확하지 않다. 현재 사업 설계는 국토부가 하지만 정작 예산 집행은 농림축산식품부가 하고 있다.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는 “기반시설 정비에만 돈을 들일 게 아니라 종합적인 정비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인 정비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대통령 직속기관을 만들어 장기적인 로드맵을 짜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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