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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일 교수 "장인정신 깃든 기초학문이 세상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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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기자I 2013.06.28 07:00:00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수학자로 3번째

박종일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가 주요 연구 분야인 ‘4차원 다양체 이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울대학교)
[이데일리 박보희 기자] 대학을 취업학원이 아닌 학문의 전당으로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정한 ‘대학인‘(大學人)들이 있다. 명강의로, 학문적 성취로 존경받는 교수들을 찾아 그들의 가르침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우리 사회 전체가 수학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수학자에게도 이런 상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 거죠.”

미적분이 섞인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가 가득한 화이트보드, 키와 열을 맞춘 원서가 빼곡한 책장, 크기와 종류별로 구분된 책상 위 서류 정리함까지, 이 방의 주인은 ‘수학자’라고 말하는 듯 하다.

올해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한 박종일(50)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자신의 수상을 ‘수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높아진 덕’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한,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인을 선정해 정부가 주는 상이다. 지난 2003년부터 지금까지 28명이 이 상을 받았지만 그중 수학자는 단 두 명뿐이었다. 박 교수가 세 번째 수상자가 됐다.

“제가 연구하는 것은 4차원 다양체라는 거에요. 우리가 사는 공간인 3차원에 시간이 더해지면 4차원인 시공간이 되죠. 그런데 이 4차원 공간은 시공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양의 공간이 있어요.”

박 교수는 이 수많은 4차원 공간의 모양과 그 성질을 찾아내는 일을 평생의 연구 주제로 삼았다. 특히 공간의 모양을 정하는 불변량 중 하나인 ‘기하종수’가 0이고 단순연결된 4차원 다양체 중에 음(-)으로 휘어진 모양의 공간도 있다는 사실을 새로운 방법으로 밝혀내 주목을 받았다. 2010년에는 국제수학자총회에서 국내 수학자로는 유일하게 초청연사로 뽑혔고, 2012년에는 미국수학회 초대 석학회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삼각함수라는 수학적 과정을 통해 전체 지구의 모양을 볼 수 없지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밝혀냈어요.”

4차원 다양체 이론이 현실에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매일 사용하는 신용카드부터 의료기기, 스마트폰 등 우리 생활 곳곳에 수학이 사용되지 않는 영역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실의 삶과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은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꿔온 것이 순수 수학의 힘이라는 설명이다.

“어떻게 이용할까가 아닌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게 순수 학문이죠. 과거에는 이론이 생활에 적용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은 그 주기가 짧아졌어요. 그래서 수학같은 기초과학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고 있고요. 이점은 긍정적이라고 봐요.”

그는 기초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적절한 지원과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부가 지원해야 할 분야와 민간에 맡길 분야를 나눠서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기초과학 지원액은 늘고 있지만 현장에선 잘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적절히 배분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장인정신이 필요한 연구 분야가 있거든요. 당장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기다려주는 인내심과 실패를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무엇보다 최근 순수 학문에 대한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반가워했다.

“최근 2~3년간 수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보면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수학이 사회에서 잘 쓰일 수 있다는 것을 학부모와 학생들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인식이 퍼지면 순수학문이나 이공계 기피 문제는 자연히 해소 될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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