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조세피난처 중 한 곳인 버진아일랜드를 업무차 방문한 적이 있는 국세청 한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한 인터넷언론의 폭로로 조세피난처와 페이퍼 컴퍼니(유령법인)의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금 탈루의 진원지로 비판받는가 하면 정상적인 기업활동의 일환이라는 반론도 있다.
사실 페이퍼 컴퍼니는 오래전부터 기업과 개인 경제활동의 영역에 있었다. 페이퍼 컴퍼니 설립만을 두고 탈세혐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공기업을 제외한 자산 1조원 이상 그룹 가운데 24개 그룹이 조세피난처에 125개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올 3월 기준 이들 기업의 자산 총액은 5조6903억원에 이른다. 해외에서도 구글, 애플 등이 세금을 줄이기 위한 합법적인 수단으로 조세피난처를 이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페이퍼 컴퍼니가 문제되는 이유는 뭘까?. 또 페이퍼 컴퍼니 설립자 명단에 세정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뭘까?
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금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업이 해외 부동산 투자나 외국 기업과의 합작사업에서 페이 퍼컴퍼니를 활용하면 법인세 등을 절약할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이나 기업이 이를 악용하는 경우다. 제도권에서 상대적으로 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우고, 감시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역외 탈세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국세청은 역외 탈세를 뿌리 뽑기 위해 10억원 초과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해외 금융계좌에 대한 자진신고를 받고 있지만 지난 2년간 버진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의 계좌 신고는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이번에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공개가 없었다면 영원히 밝혀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 “페이퍼 컴퍼니 설립=탈세는 틀린 말..철저한 검증 필요”
물론 이번에 공개된 인사들이 탈세 ‘혐의’는 짙지만 직접 탈세를 저질렀다고 단정할 순 없다.
안종석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거나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탈세 혐의가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페이퍼 컴퍼니를 탈세에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절세를 위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했는지, 탈세목적이었는지를 구분해내는 작업이 중요해진다. 세정당국이 페이퍼 컴퍼니 설립 명단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페이퍼 컴퍼니 설립자에 대한 혐의 확보는 녹록지 않다. 공개된 명단의 인물들이 작정하고 법망을 교묘히 피해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이를 활용했다면, 이에 대한 탈세 혐의를 가려내는 건 여의치 않은 일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조사에 투입되는 인원과 비용이 한정적인데다 전문가들을 동원해 작정하고 법의 허점을 파고들었다면 검증작업이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일단 국세청은 이번에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인물에 대한 대대적인 검증작업에 돌입했다. 지난 15일 웹상에 전면공개된 150여명의 페이퍼 컴퍼니 설립 한국인 명단에 대한 분석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 조세피난처
법인세·개인소득세에 대한 과세가 전혀 없거나, 혹은 15% 미만의 매우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세제상의 특혜를 제공하는 국가나 지역을 뜻한다. 해당 지역에선 대신 계좌 유지와 법인 설립 수수료를 받는다. 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는 버진아일랜드, 케이맨제도 등이 있으며, 미국, 스위스, 싱가포르, 홍콩 등 금융 선진국의 역외금융센터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