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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외환시장 마비, 방향잃은 환율

손동영 기자I 2000.08.27 13:57:23
외환시장이 실종됐다. 지난 24일이후 외환시장에서 환차익을 노리는 은행간의 투기적 거래가 완전히 사라졌다. 외환거래량의 70~80%를 차지하는 은행간 거래가 사라지면서 하루 현물환 거래량은 평소의 5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다. 이번주(8월29일~9월1일) 환율은 아무래도 월말 수출기업들의 네고가 집중되면서 하락압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의 주식매수가 지난 8일이후 13영업일째 지속되고있어 달러공급 요인이 누적돼있는 점도 하락을 이끌 요인중 하나다. 반면 잠복해있는 기업들의 결제수요가 워낙 많고 환율안정을 바라는 당국의 의지도 여전해 환율하락폭은 이미 경험해온대로 1~2원선에서 멈출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네고물량 공급이 예상에 못미칠 경우 환율은 상승쪽으로 고개를 들 가능성마저 있다. 그러나 외환시장 기능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전망은 어쩌면 무의미할 지 모른다. 딜러들이 빠진 시장에서 환율은 어느 방향을 튈 지 예측키 어렵게됐다. 상승요인 : 기업 결제수요, 공기업 환리스크 헤지수요 하락요인 : 수출기업 네고물량 유입, 외국인 주식매수대금, 달러/엔 환율 하락 ◇지난주 외환시장 동향 지난 7월중순이후 한달이상 1114~1115원에 환율이 갇혀버리면서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의욕이 많이 떨어졌고 결국 폭발했다. 지난 24일 30여명의 외환딜러들이 오찬회동을 갖고 "은행간 거래 자제"에 합의하면서 외환시장은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다. 딜러들이 호소하는 답답함은 거래량 감소와 환율변동폭 축소. 지난주 환율은 21일부터 5일동안 각각 1114.50원, 1114원, 1114.60원, 1114.10원, 1114.10원을 기록했다. 일주일 내내 60전을 움직이는 시장에서 딜러들이 환차익을 얻을 기회는 애초부터 없었던 셈. 이에 따라 현물환 거래규모도 지난 23일까지 하루 20억달러 수준을 유지했으나 거래자제 결의 당일인 24일 12억3760만달러로 줄어들었고 25일엔 4억1320만달러로 급감했다. 25일 거래량은 IMF이후 최소거래량 기록이었다. 증시에서 외국인들은 21일부터 5일동안 각각 694억원, 971억원, 320억원, 446억원, 595억원 주식순매수를 이어갔다. 순매수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외환시장에 달러공급요인이 됐지만 그 규모가 미미해 환율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웠다. 더욱이 최근 외국인의 주식매수대금은 원화로 갖고있던 자금으로 대부분 충당, 외환시장에 추가로 공급된 달러는 많지않았다. 환율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는 의미다. ◇외환시장 정상화를 둘러싼 입장차이 외환딜러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최근의 고정환율이 당국탓이라는 것이다. 환율을 고정시켜놓은 균형잡힌 달러수급은 당국이 만든 것이고 이제 그런 인위적인 수급균형을 풀어달라는 요구다. 그러나 당국은 수급균형이 시장의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란 입장이다. 그리고 환율변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원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엔화나 유로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곁들여지고있다. 이에 따라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당국으로부터 "지켜보겠다"는 정도의 발언만 듣고있다. 딜러들의 은행간 거래 자제는 어쩌면 딜러들의 파업 혹은 태업으로 비쳐진다. 은행간 거래를 자제하겠다는 것은 딜러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의미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정부가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딜러들이 선택할 수단이 많지않다는 점이다. 딜러들의 거래자제가 무한정 지속되기 어렵기도 하고, 당국도 시장불개입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딜러들의 주장을 수용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각기 치열하게 경쟁하는 외환시장의 속성상 딜러들의 결의가 언제까지나 지켜질 것으로 보는 사람을 거의 없다. 어떤 계기가 됐든지 환율이 균형을 잃는 순간 합의가 깨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이번주 환율흐름의 변수들 8월말과 9월초를 연결하는 한 주를 맞으면서 딜러들의 심리도 복잡해질 전망이다. 우선 월말을 맞아 수출업체들의 네고물량 유입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주식매수가 이어질 경우 더이상 물량부담을 피하기도 어렵다. 106엔대로 떨어진 달러/엔 환율도 부담스럽다. 엔화강세, 달러약세가 지속될 경우 자연스럽게 원화도 강세로 돌아설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환율하락 요인이 많지만 어느 누구도 지금보다 2~3원이상 하락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치는 않는다. 최근 한달여동안 확인한대로 달러수요가 의외로 두텁게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결제수요가 우세하다는 8월을 거쳐오면서 분명해진 대목이다. 외환시장으로 흘러들어온 외국인 주식매수자금이 증시의 순매수규모에 턱없이 모자라는 점도 그렇다. 새로 달러를 들여와 주식을 사는게 아니라 이전에 원화로 바꿔놓은 자금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증시의 외국인 주식매수가 환율에 끼치는 영향을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은행간 외환거래가 전면중단된 상황이어서 큰 규모의 달러수요나 달러공급이 돌출할 경우 환율이 급변동할 가능성은 커졌다. 그래서 지난 25일 대기업들은 외환거래를 극도로 자제하기도했다. 환율변동폭이 커질 경우의 부담을 떠안기 싫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딜러들의 거래자제와는 무관하게 환율은 이전까지와 같은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그러나 언제 돌출할 지 모르는 달러수요나 공급이 시장의 잠을 깨우고 전혀 예측못한 방향으로 환율을 이끌 가능성도 전보다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장참가자들은 여전히 1112~1118원의 다소 넓은 범위로 환율을 예상하고있다. 일주일동안 60전 움직이는 시장에서 변동폭을 5~6원이상으로 잡은 것도 어느 면에선 무책임할 수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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