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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대표는 당시 심경에 대해 “하루가 십 년 같았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고통에서 빠져나올 실마리는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만들고, 현재의 내가 모여 미래의 나를 만드는” 역사에 있었다. 반성하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바로 대학원 재입학이었다. 2023년 연세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 전공으로 재입학한 설 대표는 올 연말 논문 본심을 앞두고 있다. 그는 “학교에 다닌 덕분에 역사에 대한 인사이트가 더욱 넓어졌다”고 말했다.
방송 활동도 조심스럽게 재개했다. 2022년 MBN ‘그리스 로마 신화-신들의 사생활’에 출연했고, 지난달 2일엔 MBC 파일럿 프로그램 ‘심장을 울려라 강연자들’로 지상파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방송에서 설 대표는 고등학교 시절 다리를 다친 뒤 체중이 100㎏까지 나갔던 사연, 8수 끝에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이야기 등 그동안 공개한 적 없는 자신의 개인사를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설 대표를 향한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엇갈린다. 역사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알려주는 그의 재능에 공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논란으로 인한 실망감을 아직 안고 있는 이들도 있다. 설 대표는 “‘악플’도 관심의 표현이라 생각한다”며 “모든 것은 내가 감수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내 소명은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지식을 후배 세대에 보다 쉽고 재미있게 나누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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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방송 복귀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모두 내 잘못이었다. 원인은 나 자신이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문이 문제가 됐으니 다시 공부를 하고 제대로 논문을 쓰자고 마음먹었다. 2010년 졸업한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다시 들어갔다.
주변에선 50이 다 된 나이에 아들 딸뻘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겠느냐며 걱정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발제, 발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개강총회와 종강총회도 다 나갔다. 학생들 사이에서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언제 또 젊은 친구들과 교감할 수 있을까 싶었다. 행복하고 소중한 시기였다. 지옥에 뛰어드니 그 속에 ‘우리들의 천국’이 있었다.
최근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다시 봤다.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난파당한 주인공이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공생한다. 인생 최악의 상황이지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로운 일을 체험한다. 먼 훗날 회고록을 쓰게 된다면 “힘들었지만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고 나를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게 한 전화위복의 시기였다”고 쓰고 싶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했음에도 역사 강사가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고등학교 때 교회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셰익스피어를 알게 됐다. 위대한 배우·극작가·연출가를 꿈꿨다. ‘수학의 정석’과 ‘성문영어’ 대신 셰익스피어 희곡을 끼고 살았다. 몇 차례 재수 끝에 연영과에 들어갔다. 천국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그곳엔 또 다른 지옥이 있었다. 예체능은 겉은 화려해 보여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 무렵 한 학원에서 중학생 사회 강사를 찾는다는 ‘벼룩시장’ 구인광고를 봤다. 사회 교과 중에서도 국사는 자신이 있었기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사명감 같은 건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다. 배우로서 학원 강사 역할을 경험할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는 한 학생이 “선생님을 만나 역사 교사라는 꿈이 생겼다”고 하더라.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인생이 바뀐 순간이었다.
아이들 앞에선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을 다니며 역사를 파고들었다. 셰익스피어보다 개연성이 탄탄하면서 반전까지 갖춘 드라마가 역사 속에 있었다. 그때부터 역사 강사로서 사명감과 소명 의식을 갖게 됐다. 교단과 무대는 모습만 다를 뿐이다. 가슴 속에 품은 대본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일과 머릿속의 지식을 대중과 나누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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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가 생산자라면, ‘역사 스토리텔러’인 나는 일종의 소매상이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면 좋은 농수산물 재료를 골라 레시피대로 요리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대중이 원하는 주제에 맞춰 역사학 속에서 주제와 잘 어울리는 소재를 찾아 이야기로 전달한다.
요리를 조리하다 보면 어느 정도 양념이 들어간다. 역사도 비슷하다. 고대사(史)의 경우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 보니 개연성을 위해 어느 정도 양념이 필요하다. 물론 평생 고대사를 연구한 분들에겐 이런 점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측면에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대중이 원하는 대로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개하면서 이 이야기가 여러 학설 중 하나라는 것을 꼭 언급하고 있다.
―2019년 에듀테인먼트 콘텐츠 브랜드 단꿈아이를 설립했다. 단꿈아이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 소명은 역사와 인문학에 대한 지식을 후배 세대에 보다 쉽고 재미있게 나누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역사는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나의 타고난 재능으로 역사는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우리 삶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런 목적으로 세운 것이 ‘단꿈아이’다. 단꿈아이는 우리 역사를 만화, 애니메이션, 뮤지컬 등 다양한 지식 콘텐츠(IP)로 만들고 있다. ‘지식을 주는 디즈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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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서울 출생 △단국대 연극영화과 학사 △연세대 교육대학원 역사교육학 석사 과정 재학 △메가스터디 역사 강사 △EBSi 역사강사 △이투스 한국사영역 강사 △단꿈교육 대표이사 △단꿈아이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