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반도체,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AI) 등 중국 3개 첨단 분야에 대한 미국 자본의 투자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부터 해당 분야의 중국 투자를 진행하려는 미국 사모펀드(PE)나 벤처캐피털(VC)등은 사전에 투자 계획을 신고해야 하고, 투자 여부는 재무장관의 결정에 따라야 한다. 중국 자본의 미국 첨단 기술 투자 금지와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이어 중국의 ‘기술 굴기’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포석이다.
미국 자본과 중국 하이테크 기업들은 20년 넘게 공생해 왔다.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와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 등 중국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블랙록, 골드만삭스 등 미국 거대 자본을 통해 급성장을 거듭했고 미국 투자자들도 이들의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하지만 미·중 관계가 악화하며 지난해 미국 자본의 대중 투자금액(70억 2000만 달러)이 전년도의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등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이번 조치는 이런 상생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미국 정부가 명시적으로는 자국내 기업에만 조치를 적용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동맹국 참여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된 데 이어 영국·독일 등 유럽 동맹국들도 비슷한 성격의 규제에 착수한 상태다. 미국이 지난해 10월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자 네덜란드와 일본이 동참하며 서방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유입을 차단했듯 이번에도 유사한 흐름이 재연될 조짐이다.
미국과 핵심 동맹국인 우리나라도 어떤 형태로든 동참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타격을 받은 우리 기업들이 또 난관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동맹과 경제적 실리를 모두 잃지 않는 촘촘한 외교력이 절실하게 됐다. 이럴 때일수록 초격차 기술 개발과 고급 인재 육성 등 내실을 다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주요국 경쟁이 불을 뿜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세제 지원과 규제 혁파를 통해 글로벌 전장에서 뛰고 있는 기업들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