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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모(31)씨는 장마 소식을 접한 지난달 말, 집 지하 주차장에 주차해두던 차를 바깥으로 옮겨뒀다. 이씨는 지난해 장마 때 폭우로 지하 주차장 일부에 물이 들어찼던 기억이 있는데다, 경북 포항에서 일어난 사고 뉴스도 생생하다고 했다. 작년 9월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포항의 한 아파트에선 지하주차장이 침수돼 차를 빼러 갔던 주민 8명이 안타깝게 숨졌다. 이씨는 “오송 지하차도 침수를 보면서 작년 포항에서 일어난 지하주차장 침수 사건이 떠올랐다”며 “설마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장마 시작 전에 차를 빼놨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반지하 방도 두려움의 대상이 됐다. 서울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김모(26)씨는 지난해 장마와 태풍으로 반지하가 침수돼 주민들이 목숨을 잃거나 세간살이를 다 버린 뉴스들을 본 뒤로 월셋집을 새로 구했다고 했다. 김씨는 “반지하에 살면서 비가 많이 내릴 때마다 걱정이 앞섰는데 지난해 반지하에서 돌아가신 분 뉴스를 본 뒤엔 빚을 내서라도 이사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며 “지금은 월세 10만원을 더 내고 있지만 작년보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인터넷에서도 이러한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비 오는 날 지하차도는 절대 들어가면 안 되겠다”, “주말에 지하차도 잠기면 어쩌지 하면서 들어갔다”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정부가 지하 공간을 활용해 추진 중인 사업에 대한 불신감도 팽배했다. 누리꾼들은 “경부 고속도로를 지하화하면 언젠가 물난리 날 텐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동부간선도로는 소나기만 와도 침수돼서 툭하면 사람이 사망하는 곳인데 전부 지하화하면 대형참사를 막을 길이 없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이러한 공포감을 없애려면 정부가 안전시설 등을 강화하는 방법 밖엔 없다고 지적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류는 원래 지하실과 같이 어두운 지하 공간을 싫어하는 등의 ‘협소 공포증’을 가지고 있는데, 자주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극복해온 것”이라고 짚었다. 임 교수는 이어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건의 경우도 지하라는 공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안전 문제에 안일했던 대처가 문제였다”며 “시민이 필요 이상으로 지하에 대한 공포증을 지닐 필요는 없다, 정부가 안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시설 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포비아라는 건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소산일 뿐,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는 안전 시스템 실패가 낳은 사고로 봐야 한다”며 “매해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는데,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거나 안전 시설물 설치를 강화해 사람들이 (인프라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