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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마땅한 법원 양형 'AI판사'가 맡을수 있을까

이배운 기자I 2023.06.27 04:37:53

재판 모든과정 맡지는 못하지만…양형업무 활용 주목
들쭉날쭉한 양형편차 감소 기대…사법불신 해소할 듯
윤리성·편향성·불투명성 우려 등 선결과제 만만치않아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법조계 전문가들이 재판에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머리를 맞댔다.
(사진=이데일리 DB)
2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강당에서 ‘AI와 양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전문가들은 모든 재판 과정을 스스로 진행하는 AI 판사의 탄생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의 AI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까지 도달하지 못했고, 비언어적 정보를 수집하는 영상·음성인식 기술도 아직은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대신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양형’ 업무에서의 AI 활용 방안은 유력하게 거론된다. 법관들은 유사 사건들의 선고 결과를 종합·검토해서 양형을 결정하는데, 대량의 데이터를 학습해 결론을 도출한다는 점에서 AI도 작동 원리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AI로 양형 업무가 자동화되면 법관은 업무부담을 대폭 덜 수 있다. 그만큼 다른 복잡한 쟁점에 집중할 수 있어 재판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재판부에 따라 들쭉날쭉한 양형 편차는 사법 불신을 확대하는 원인이 됐지만, AI는 이러한 편차를 감소시켜 재판 불복 비율을 줄이고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데도 기여할 전망이다.

‘AI 감성분석기술’을 활용해 국민의 법감정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공청회·여론조사 등 전통적 의견수렴 방식은 표본이 적고 대표성도 떨어지지만, 온라인상에는 국민들이 솔직한 의견을 피력한 댓글이 무수히 많다. 이를 AI로 수집·분석해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범위험성 예측 기술’에 AI를 접목해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재범위험성 평가는 피고인의 구속과 전자장비 부착 결정 등 양형 판단에 중요한 근거가 되며, 특히 미국은 이미 AI 예측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법관의 개인적 성향에 따른 양형 편차를 줄이고 인종차별적 사고 등이 개입할 여지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다만 양형 AI 전면 적용까지는 쉽지 않은 난제들이 있다. 우선 인공신경망 형태의 AI는 특정한 결과가 도출된 과정을 해석하기 어려운 이른바 ‘블랙박스 문제’를 겪는다. 원칙적으로 재판 당사자는 판결이 나온 이유를 알아야 하는 만큼 AI가 판단을 내린 과정을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AI가 인간의 편견이 개입된 데이터를 학습해 인간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할 위험성이 존재한다. 설령 AI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더라도 그 판단을 근거로 죄인을 처벌하려면 철저한 정당화 논리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 밖에도 △AI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 확충 △오작동·해킹 우려 불식 △오류 발생 시 책임소재 문제 등도 주요 선결 과제로 꼽힌다.

이종원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효율적이고 안전한 양형 AI를 개발하려면 사법AI 전반을 다루는 기구를 설치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재판은 사법부에서 관장하는 사무이고, 업무의 특수성이 매우 높아 장기적 안목으로 별도의 기구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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