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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기업에도 낮은 문턱…기술주 정체성 유지도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나스닥의 시가총액은 17조2000억달러로 전 세계 증권거래소 1위인 뉴욕증권거래소(22조1000억달러) 다음으로 시가총액 규모가 크다. 세계 2위 거래소인 만큼 나스닥 상장사의 면면도 화려하다. 미국 증시 전체에서 시총 1~4위 자리를 꿰차고 있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아마존닷컴은 모두 나스닥에 포진해있다. 동학 개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미국 주식인 테슬라도 나스닥 기업이다.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나스닥으로 옮겨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 1999년 정보기술(IT)업체 시스코시스템즈에 이어 2021년에는 캐나다 대마초 생산업체 헥소가 이전 상장했다. ‘한국의 나스닥’을 표방하고 있는 코스닥 시장에서 기업들이 코스피 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나스닥이 ‘기술주 명가’ 지위를 유지해오고 있는 것은 회사설립 초기 적자를 내는 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하는 등 시장 진입 문턱을 낮췄기 때문이다. 투자 위험이 따르지만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기대할 수 있어 투자금 유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기술주 시장이라는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해 온 것도 롱런 비결이다. 미국에서는 업종이나 사업 성격에 따라 기업들이 상장 시장을 선택하는데, 주로 기술주 기업들이 나스닥행을 택한다. 특히 애플, MS, 알파벳 등 글로벌 거대 IT 기업들이 성장 후에도 나스닥을 떠나지 않고,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주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공고히 유지되고, 이는 새로운 IT 기업을 유입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혁신으로 무장한 벤처 중심의 시장이라는 점도 나스닥이 가진 경쟁력이다. 지난 1990년대 중반 인터넷 보급 확산으로 IT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폭증하는 이른바 ‘IT버블’ 시기에 한국의 코스닥 시장을 비롯해 일본의 자스닥(JASDAQ), 독일의 노이어마르크트(Neur Markt) 등이 만들어졌다. 나스닥을 모델로 한 주식시장이다.
하지만 노이어마르크트는 2000년대 초, 자스닥은 지난해 도교증권거래소 재편 과정에서 일부 소속 기업이 마더스 시장과 합쳐졌다. 이어 신흥·벤처기업이 참여하는 ‘그로스(Growth)’ 시장에 편입되며 사실상 사라졌다. 노이어마르크트의 경우 일부 상장사들의 회계부정에 따른 시장 신뢰도 훼손, 자스닥은 애매한 시장 포지션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와 반대로 나스닥은 닷컴버블 이후 이른바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이 4차산업혁명 기술을 주도하며 끊임없이 진화한 덕에 견고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교육·금융시장·문화적 인프라 힘, 경쟁력 근원
미국의 경제·사회·문화적 인프라도 나스닥의 경쟁력을 이끄는 동력이다. IT기업과 벤처기업의 요람인 실리콘밸리로 인재가 몰리는 기반과 교육의 힘, 역동적인 금융시장,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제도 등의 장점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경쟁력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성장주 주식시장 가운데 나스닥만 성공을 거둔 것은 미국 벤처·혁신기업이 IT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음을 냉정하게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스닥 시장이 장기간 성장이 정체된 것은 미국 이외 성장주 시장이 겪는 보편적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시장 참여자 간 이익 비대칭, 경제 규모에 비해 상장사가 많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센터장은 “코스닥 기업 수는 1600여개, 나스닥은 3300여개지만 두 나라의 경제 규모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서 “(상장사)시장 공급이 끊임없이 이어져 주가가 억눌리고, 제도권 증권사에서 100개 내외 기업만 분석이 이뤄지는 등 코스닥 기업 수가 한국 시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규모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