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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보다 더 재미있다”…에스엠 제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김성훈 기자I 2023.02.18 07:30:00

[위클리M&A]
드라마 아닌가요? 에스엠 경영권 분쟁
창업주와 현 이사회간 '한지붕 내분'
거액 투자한 하이브·카카오도 배수진
주총 표 대결에서 누가 이기냐 관건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이제는 물러나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어리게 봤던 그의 눈에서 이전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창업주인 왕 회장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어떻게, 네…네가 이럴 수 있니?” 속으로 생각했으나 티를 내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손을 써놨다. 네 뜻대로 되진 않을거야. 곧 발표가 날 거다.” 대화가 끝나자 서로는 그렇게 눈을 마주쳤다. 양쪽 모두 이전에 보던 그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건너선 안 되는 다리를 건넌 뒤 강 너머 서로를 바라보는, 알 수 없는 차가움이 느껴지는 그런 시선이었다.

이수만 에스엠 전 총괄프로듀서와 이성수 에스엠 공동 대표(사진=에스엠)
◇ 드라마 한 장면 아닙니다, 실제예요

최근 자본시장에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지고 있다. 이름 하여 에스엠(041510)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다. ‘우리네 세상이 어쩌면 더 드라마 같다’는 말을 줄곧 들었는데, 에스엠이 새삼 이를 증명하고 있다.

에스엠 경영권 분쟁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대중에게 친숙한 기업이란 점 때문이다. 한참을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업을 영위하는 어떤 회사에서 불거진 경영권 분쟁이라면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 모른다.

작금의 상황은 이수만 전 총괄 체제에 반기를 현 이사회와의 갈등이 시발점이었다. 이는 다소 독특한 구조를 띤다. 보통 외부에서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거센 움직임에 기존 이사회가 반격에 나서는 게 통상적인 구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대주주와 현 이사회 간 ‘한지붕’ 내분이 분쟁 발발의 원인이었다.

흔치 않은 구도 속 카카오(035720)가 에스엠 이사회로부터 지분 9%를 인수하며 기름을 부었다. 자칫 회사에서 물러날 처지에 놓인 이 전 총괄은 하이브(352820)에게 자신의 지분 대부분을 매각하며 새 국면을 맞았다.

하이브는 내친김에 일반주주에게도 이 전 총괄에 인수한 주당 가격에 지분 25%를 사겠다며 공개매수까지 선언했다. 회사가 누구의 품에 안기느냐를 두고 크고 작은 폭로전이 더해지면서 ‘사생결단’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대적 M&A’라며 번갈아 보도자료를 내고, 유튜브 영상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누리꾼들이나 주변의 평가도 흥미롭다. 일부 의견만 봤다지만, 양측 입장이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했던 적이 또 있었나 싶다.

일례로 음반제작사 440여곳을 회원사를 두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이수만+하이브쪽을, 에스엠 직원 208명은 이사회+카카오 쪽을 지지하고 있다. 최근 쏟아지는 기사 속 댓글들을 봐도 ‘이수만+하이브’ 측과 ‘이사회+카카오’ 측을 응원하는 견해가 상충하고 있다.
에스엠 지분 변화 예상[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경영권을 원해? 주주의 마음을 얻어라

양측 입장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이사회+카카오 측은 ‘이제는 구태의연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시대를 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전 총괄이 창업주지만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부담스런 이익을 가져가는 관행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경쟁사와 비교해 신인 데뷔가 드물고, 활동이 왕성하지 않은 소속 가수들의 행보도 이러한 관행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수들이 더 많이 활동하고, 더 많은 신인을 배출하겠다는 멀티 프로듀싱 의지를 ‘SM 3.0’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반면 이수만+하이브 측은 ‘창업주를 이렇게 대하는 게 말이 되냐’고 강변한다.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라이크기획 로열티 수취 관행도 끊고, 경영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사회도 나왔는데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다.

SM 3.0 시대를 논하기 앞서 지금의 에스엠이 있기까지 이 전 총괄의 공은 무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전 총괄뿐 아니라 회사에 몸담은 일부 소속 연예인들도 이런 견해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속절없이 불명예 퇴진할 바엔 이사회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주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마저 엿보인다.

이 순간,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확언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각자의 우호 세력 꾸리기에 여념이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백기사’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 어디선가 확인되지 않은 설익은 소식이 소용돌이치며 혼돈의 양상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만큼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자욱한 안개를 걷어내면 몇 가지 확실한 점은 있다. 첫째로 이 전 총괄과 이사회 간 봉합은 이제 완전히 물 건너 갔다는 점이다. 이미 수천억원을 투자한 하이브와 카카오도 여기서 밀리면 입장이 곤란해진다. 경영권을 차지하지 못할 경우 가성비가 ‘심하게’ 떨어지는 투자를 한 셈이어서 물러날 곳이 없다. 이기거나 들러리가 되거나 두 가지 중 하나씩 나눠 가져야 한다.

두 번째로는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양측이 그리는 이상향이 확연히 다름을 이제는 모두 알아버렸다. 세간에 공개된 이사회의 ‘SM 3.0’이나 이성수 공동대표의 폭로를 통해 알려진 이 전 총괄의 ‘나무 심기’ 등이 그것이다. 양쪽 모두 좋은 말로 회사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건조하게 바라보면 이들이 사회 운동가는 아니기에 각자 원하는 이익에 부합하는 주장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제 결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공개매수와 내달 열리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혼탁한 상황은 한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주총 표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에 쏠린다. 수천억원을 투자하고, 몰라도 됐을 폭로가 난무하는 이유도 결국 표 대결 승리를 위한 출혈이라고 볼 수 있다.

유명하고 돈도 많은 이들이 에스엠 경영권 차지를 위해 힘겨루기를 하는데, 정작 이들의 성패가 주주들 손에 달렸다는 점은 한편으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에스엠 주주들의 마음을 살 새 주인은 누가 될까. 지금 이 시간에도 주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폭로와 뜬 소문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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