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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가 신고를 받아 진행한 현장조사마저도 위원장·부위원장이 관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재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공정위가 진행한 현장조사 1076건 중 143건(13.3%)이 위원장·부위원장의 결재를 받아 시작됐다. 이는 공정위에서 ‘판사’ 역할을 하는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사건 조사과정에 결재권자로써 직접적인 개입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공정위는 경쟁정책을 집행하고 불공정 행위를 직접 조사한다. 여기에 법원 1심 판결의 효력을 지닌 심판 기능도 맡고 있다. 검사(조사)와 판사(심판) 역할을 한 기관에서 동시에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건 조사 등은 사무처가, 심의는 총 9명의 공정위원(공정위원장, 부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이 나눠 맡고 있지만, 공정위원장이 사무처장을 밑에 두는 조직 체계로 인해 사실상 ‘칸막이’가 없는 것과 다름없다.
조사와 심의가 한몸에서 이뤄져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는 데다, 권력자가 공정위 업무에 개입해 원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 입장에서는 방어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항변한다. ‘판사’인 위원장이 특정 기업에 문제가 있다는 걸 예단하고 ‘검사’인 사무처에 지시해 무리한 조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공정위가 내린 시정조치 가운데 기업들이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비율(불복률)은 22.7%(2020년 기준)에 달했다. 시정조치를 받은 기업 5곳 중 1곳 이상이 공정위 조치에 반발했다는 의미다. 1심 기능을 수행하는 공정위가 사건처리절차 등에서 피심인의 항변권(기업 방어권) 등을 보장하지 않은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칙적으로는 조사업무를 사무처장 전결로 하고,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위원장에게 사후 보고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면서 “위원장이 보고받고 지시하는 범위를 구체화해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기형 의원은 “공정위의 심의가 국민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조사기능과 심판기능의 분리가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다만 조사기능과 심판기능의 분리 과정에서 공정위의 법집행 역량이 훼손되지 않도록 세심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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