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국 예능이 잔인하다고 비판받은 이유 (ft. 짜파구리)

박한나 기자I 2020.03.01 05:00:00

'기생충' 속 한우 짜파구리는 '참으로 상징적'
금수저-흙수저 바꿔살기 방송, 시청소감엔 "불편"

“아줌마, ‘짜파구리’ 할 줄 아시죠? 냉장고에 한우도 있으니까 좀 넣으시고요.”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이데일리 박한나 기자] 일상에서 생기는 의문을 [왜?] 코너를 통해 풀어봅니다. (이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열풍 후 세계 영화 팬들에게 ‘짜파구리’(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함께 끓인 음식)가 별식으로 떠올랐다.

짜파구리에 고기를 더하는 조리법도 화제인데, 영화에서 연교(조여정 분)네가 짜파구리에 남는 소고기를 넣는 장면 때문이다. 라면은 기택(송강호 분)네도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지만, 소고기 중에서도 비싼 한우 채끝살이 들어가면서 상차림 가격은 ‘넘사벽’이 됐다.

영화에서는 짜파구리를 비롯해 여러 음식으로 두 가족의 상황을 보여준다. 기택네 가족은 백수 시절 저렴한 발포맥주인 필라이트를 마시고 기우와 기정 남매가 과외 자리를 얻은 기념으로 돼지고기 찬이 나오는 6000원짜리 한식 뷔페에서 외식을 한다. 이후 박 사장네 집에 전원 취업한 후에는 수입 맥주와 함께 소고기로 축하 파티를 한다.

기택네 가족들이 자신의 집인 반지하(위)와 연교네 전원주택(아래)에서 각각 파티를 벌인 모습 (사진=영화 ‘기생충’ 스틸컷)
■빈부차를 가장 쉽게 체감하는 곳은 식탁

옷과 집, 교육 수준, 영화에서 거론되는 냄새까지. 삶에는 은연중 빈부가 드러나는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유가 있으면 사고 없으면 안 사는 사치품과 달리, 어느 집이나 때마다 밥상을 차리기 때문이다.

연교네가 집을 비운 사이 기택네 가족은 맘껏 먹고 마시며 연교네 것을 누린다. 느긋하게 반신욕까지 하는 동생 기정(박소담 분)을 보고 기우(최우식 분)는 “원래부터 부잣집 딸 같다”고 감탄하며 이 집의 사위가 된다는 꿈을 꾸지만, 그들의 두집살림은 오래가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가족이 얽히는 영화를 보며 먼 나라의 방송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부유한 가족(왼쪽)과 가난한 가족(오른 쪽)이 일주일간, 서로의 인생을 바꿨다.
(사진=채널5 ‘리치 하우스, 푸어 하우스(Rich House, Poor House)’ 방송화면)
영국 채널5에서 지난해 방송한 ‘리치 하우스, 푸어 하우스(Rich House, Poor House)’. 영국 사회에서 각 상위 10%와 하위 10% 수준의 자산을 가진 두 가족이 일주일간 집을 바꿔 살아보는 내용이다.

공간뿐 아니라 아이들이 개인교습을 받고 정원에 있는 수영장을 즐기는 지, 아니면 방과 후 아이들끼리 TV를 보며 귀가하는 부모를 기다리는지, 가사도우미를 두는 지, 아니면 맞벌이에 집안일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상황도 완전히 뒤바뀐다.

한 누리꾼들은 이 발칙한 콘셉트를 ‘금수저와 흙수저가 일주일간 바꿔 사는 영국 예능’이라고 표현했다. 예능보다는 유머를 살짝 더한 다큐이지만, 금수저와 흙수저의 체인지라는 말은 정확하다.

■금수저-흙수저, 바꿔 살아보면 생기는 일

여러 에피소드 중 인기를 얻었던 한 편을 소개한다. 일주일 생활비로 200만원 이상을 쓰는 가족과 20만원 남짓으로 지내는 가족이 집을 바꿨다. 모든 면에서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지만, 특히 식탁에서 서로 충격을 받는다.

“이 돈으로 밥을 먹는다고?”

리치 하우스의 식비를 보고 푸어 하우스의 가족은 “도대체 아보카도에만 얼마를 쓰는 거냐”며 경악했다. 연교가 라면에 한우를 넣듯,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식품에 자신들의 한 달 생활비를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움도 잠시, 그들은 “잠시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고급 휴가를 선물 받은 것 같다”며 신선한 고기와 채소를 마음껏 사먹었다.

또 멋진 주거환경과 시간의 여유를 누렸다. 부모는 직접 돈을 벌고 집안일을 하는 대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교육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주어진 돈은 끝내 다 쓰지 못했다.

푸어하우스에 도착한 부자 가족들은 찬장 속에서 통조림을 발굴했다. 예산 안에서 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망치를 들었다.
(사진=채널5 ‘리치 하우스, 푸어 하우스(Rich House, Poor House)’ 방송화면)
반면 푸어하우스에 도착한 백만장자는 “차 기름값밖에 되지 않는” 생활비를 보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식탁 앞에서는 “어떻게 먹지?”라는 말을 하기 이르렀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동전까지 삭삭 긁어 계산했고, 나중에는 그다지 상태가 좋지 않은 재료들을 직접 요리하기에 나섰다. 마트에도 갔지만, 눈에 띄는 것마다 가격부터 확인하게 됐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통? ‘냉소’

좌충우돌하던 두 가족은 결국 훈훈하게 일주일을 마무리 짓는다. 상대 가족의 삶을 보다 이해하게 된 백만장자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아픈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책임지는 가장을 영웅이라 치켜세웠다. 또 휠체어를 타는 그의 아내를 위해 전동 스쿠터를 선물하며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역지사지의 영어식 표현처럼 타인의 신발을 신어 보는(walk in someone’s shoes) 흥미로운 실험이었다. 방송이 화제가 될수록 빈부격차 해소나 계층간 이동에 대한 이야기도 더 나오게 될 듯했다.

하지만 방송에 대한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평소 마주칠 일도 없었던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통 시도에 냉소적 반응을 보인 것. ‘가장 잔인한 쇼’,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송’이라는 시청소감이 터져 나왔다. 빈부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거북하다는 지적이다.

또 출연한 가난한 쪽은 ‘달콤한 경험’을, 부유한 쪽은 ‘값진 교훈’을 배웠다고들 했지만, 해피엔딩이 아닐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제자리로 돌아온 푸어하우스의 박탈감이 클 것이라는 우려다. 연교네서 꿈을 꾸던 기택네 가족이 침수된 반지하로 돌아왔을 때 기분이라 생각하니, 이런 시청소감이 좀 더 와 닿는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