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가 희망이다]"퇴사가 유일한 탈출구"...초년생 울리는 직장갑질

정성광 기자I 2019.01.24 00:12:01

2030 직장인, 직장 갑질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퇴사 결심
직장인 73.3%, 최근 1년 이내 직장에서 괴롭힘 경험한 바 있어

(사진=이미지 투데이)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 김보라(가명·33·여)씨는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다. 퇴사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상사의 갑질과 업무와 상관 없는 과도한 잡무 전가 때문이다. 하루는 사장이 팀장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행사에 김씨가 사장과 동행했던 적이 있다. 그날 행사에서 김씨는 무대 조명을 조절하는 리모콘이 고장났으니 대신 무대 뒤에 숨어 행사 진행 순서에 맞게 조명 스위치를 조절할 것을 지시 받았다. 8시간 동안 밥도, 물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김씨는 그날 자신이 한 번 쓰고 버릴 리모콘이 돼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고작 이런 일을 하려 어렵게 스펙을 쌓아 입사한 건가 회의감도 들었다. "응, 이런 일 시키려고 뽑은 거야"라는 상사의 대답이 그를 더 비참하게 했다.

지난 2018년 한 해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폭행사건, 간호사들에게 노출과 선정적인 춤을 강요해 논란이 된 성심병원 사건 등 직장 갑질 사건이 이슈로 떠올랐다. 일터에서의 갑질은 뉴스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도 일상 곳곳 크고 작은 직장갑질과 직장내 괴롭힘으로 수많은 2030 직장인들이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직장내 괴롭힘 실태조사보고서.2017)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 직장 내 괴롭힘 경험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장인 150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에 에 따르면, 10명 중 7명인 73.3%(1105명)가 '최근 1년 간 직장생활에서 존엄성이 침해되거나 적대적, 위협적, 모욕적인 업무환경이 조성되었음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같은 괴롭힘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경험했다고 응답한 직장인들이 46.5%(513명)로 절반에 가까웠다. 주 1회 이상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도 25.2%(278명)로 네 명 중 한 명꼴이었고, 거의 매일 경험했다고 대답한 응답자도 12%(132명)나 됐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변한 직장인들 중 20대의 응답률이 75.7%로 압도적으로 높았고 30대가 70.9%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40대는 67%, 50대가 62.1%, 60대가 58.8% 등을 기록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에 지난해 하반기(7월 1일~12월 22일) '직장 내 괴롭힘 사례 50선'을 발표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직장 내 괴롭힘을 받았다는 이메일 제보만 1403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평균 234건, 하루 평균 8.25건의 제보가 들어온 셈이다. '상사의 흰 머리 뽑기', '고구마 껍질까고 굽기', '안마 지시', '음식 억지로 먹이기' 등 이들이 겪은 갑질의 유형도 다양했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해 퇴사를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고 직장갑질 119는 전했다.

지난해 12월 퇴사한 박수연(가명·30·여)씨는 직장 내에서 따돌림을 당해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인사팀에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공식적으로 제소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돌아왔다. 박씨는 "스트레스로 불면증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며 “회사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따돌림을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식의 편견 어린 눈초리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고 했다.

(사진=뉴시스 직장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관련 기관들의 신뢰 회복 필요

양진호 사건 등 직장 내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국회에서는 지난달 27일 직장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제도적 노력도 조직문화를 바꾸려는 기업과 직장인들의 실천적 노력 없이는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며 “버스정류장에 흡연이 금지 된 것도 법 개정과 함께 이를 지키기 위한 수많은 캠페인 등 일상 계도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는 문화 조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직장 갑질 신고 제도와 창구가 마련돼도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불신과 우려가 많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을 것 같아서 우려가 된다는 걱정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만큼 지금까지 관련 기관들이 직장인들의 권리를 지키는데 미온적으로 대처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했다. 이어 “직장내 괴롭힘 피해자들이 신고를 주저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관련 노동 감독 기관들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아울러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도 손해인 만큼 기업 차원에서도 자정 노력을 펼쳐야 한다"며 “감독기관이나 행정기관 역시 실제 갑질을 근절할 수 있는 실천적 캠페인 등 개선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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