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세계는 제조업 패권전쟁…文정부, 전방위적 4차산업 전략 세워라"

김정남 기자I 2018.08.02 05:00:00

[이데일리가 만났습니다]②
文정부 소득주도 성장 내걸었지만 더 악화
'실패로 끝난 경제 실험' 선언하고 바꿔야
中 '제조 2025' 獨 '인더스트리 4.0' 본받아야
스튜어드십코드 잘 쓰면 오너 전횡 막지만
관리 논리로 기업 보복에 쓰일 위험도 존재

이필상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에 어느 나라가 먼저 성공하냐가 세계 경제의 패권을 결정할 것”이라며 “세계 주요국은 (4차 산업혁명 전략으로) 제조업을 다시 살리는 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김정남 김정현 기자] 요즘 나라 밖 산업계에서 감지되는 흐름이 있다. ‘제조업 회귀’다. 제조업이 후진국 산업으로 치부되던 때가 있었다. 그 흐름이 바뀐 게 2010년대 들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의식을 느낀 곳이 제조 강국 독일이다. 그렇게 나온 게 2010년 ‘인더스트리 4.0’이다. 제조업이 나라 경제의 토대이며, 이는 4차 산업혁명 때도 마찬가지라는 고민의 결과다. 스마트 팩토리(공장 자동화)가 대표적이다. 독일이 첫 발을 떼자 미국과 일본도 합세했고, 중국의 ‘제조 2025’는 사실상 중국판 인더스트리 4.0으로 불린다. 이 정도면 주요 선진국의 정책 역량이 새 먹거리에 집중된다는 해석도 과하지 않다. 신(新) 제조업 패권전쟁이다.

또다른 제조 강국인 우리나라는 어떤가. 어쩌면 위기론과 마주한 한국 경제에 가장 본질적인 질문인지 모르겠다. “4차 산업혁명에 하루빨리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요. 국가적인 과제로 설정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합니다.”

일흔을 넘긴 노(老)교수는 인터뷰 내내 줄기차게 ‘산업’을 말했다. 이데일리는 지난 31일 오후 경제 원로로 손꼽히는 이필상(71)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를 찾았다. 인터뷰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文, 전방위적 산업전략 세워야”

-최근 한국 경제를 평가한다면.

△대내외 악재가 겹쳐 산업 기반이 와해하는 구조적인 위기를 겪고 있다. 배에 비교한다면 엔진이 꺼져 바다에 좌초한 상황에서 포격(미·중 무역전쟁 등)을 맞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칫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정부 정책을 두고 논쟁이 있는데.

△문재인정부가 지난 1년여간 소득 주도 성장을 내걸었는데, 실패로 끝난 경제 실험을 선언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정책이 간과한 게 있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두 부문이 있다. 그런데 한국 경제의 산업 전반이 부실해지며 공급 부문이 무너진 것은 감안하지 않았다.

-정책 효과를 더 기다려보자는 얘기도 있다.

△정부가 지출을 늘려 경기를 활성화하는 수요관리 정책은 6개월 정도면 그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최소한 그런 조짐은 보여야 한다. 그런데 1년이 넘어도 효과가 나타나기는커녕 경제 지표는 더 악화되고 있지 않나. 경제정책은 안 되겠다 싶으면 바꿀 수도 있어야 한다.

-공급 부문이 살아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4차 산업혁명에 어느 나라가 먼저 성공하냐가 세계 경제의 패권을 결정할 것이다. 세계 주요국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제조업을 다시 살리는 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 (자국 제조업 보호를 둘러싼) 무역전쟁도 결국 패권전쟁으로 봐야 한다. (선진국들이 이미 미래 산업을 두고 경쟁 중인 만큼)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산업전략을 세워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어떤 내용이 있나.

△1~3차 산업혁명은 사람의 손을 기계가 대체하는 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사람의 두뇌를 기계가 대체하는 혁명이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이다. 사람의 두뇌를 지배할 수 있다면 작은 경제여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중국 등은 이미 제조업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중국에 뒤지고 있다. 중국은 제조 2025 전략에 자본을 엄청나게 투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전방위적인 산업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소득 주도 성장보다 혁신 성장에 더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있을까.

△기업금융 얘기를 해보자. 우리나라는 너무 낙후돼 있다. 한마디로 은행들이 주택을 담보로 잡고 돈 빌려주는 것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시장이 기업의 기술을 제대로 평가해 지원하는 시스템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기술을 개발해 은행에 가면 담보부터 가져오라고 한다. 평가 능력이 너무 취약하다. 다른 나라 금융사들은 스스로 기업을 찾아다니며 투자한다. 경쟁력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것뿐이겠나. ‘간판 따기식(式)’ 교육 제도도 문제다.

-규제 개혁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노동시장이든 금융시장이든 매우 경직적이고 장애물(규제)이 많은 것 같다. 새로운 산업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제 구조와 여건을 갖추는데 선진국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는 “경기가 침체할수록 부실기업 처리 문제는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부실기업 화두, 더 중요해질 것”

-새 살이 돋으려면 죽은 살은 잘라내야 하지 않나.

△사람 몸과 마찬가지로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도태돼야 한다. 경기가 침체할수록 부실기업 처리 문제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부실기업은 당연히 구조조정을 해야 하며, 이는 시장이 주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정부가 관여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측면이 있다. 그 대신 원칙을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 독립적인 구조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전권을 주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차후 책임을 물어서도 안 된다. 나중에 책임소재를 따지면 누가 (손에 피 묻히는) 구조조정을 하겠나.

-요즘 구조조정 화두는 잘 안 보인다.

△구조조정을 할 때는 사회적 대타협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수정권은 노조를 설득하기 어렵지 않겠나. 지금 진보정권이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다. 문재인정부가 부실기업 처리 문제를 잘 정리했으면 좋겠다. 아직은 나온 대책이 없지만, 그래도 자식이 잘 되려면 부모는 마음이 아파도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 원칙)가 화제다.

△국민연금의 기본원칙은 수익성과 안정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기업 임원 선출이나 인수합병(M&A)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것이 주식을 사는 목적은 아니다. 스튜어드십코드가 잘 활용되면 오너의 전횡을 막고 외국자본의 적대적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좋은 장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관치 논리로 기업 보복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도입 내용을 보면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14명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들의 독립성, 전문성, 투명성의 원칙이 확보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한 장치가 될 것이다. 원칙을 살리며 관치 논리를 적용되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전 고려대 총장)가 지난 31일 오후 서울대 집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