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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탁 부동산 납세 의무 ‘수탁자’에서 ‘위탁자’로…3년만에 회귀할까?
부동산신탁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신탁된 부동산 자산에 대한 재산세·종합부동산세의 납세 의무자를 수탁자에서 위탁자로 변경하는 내용의 지방세법·종합부동산세법을 각각 발의했다.
부동산신탁은 고객의 건물이나 토지 등 부동산 자산을 개발·관리·처분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을 말한다. △개발을 의뢰한 땅 소유주의 토지에 주택, 빌딩 등을 지은 뒤 분양·임대에 이익을 남겨주는 토지개발신탁 △소유자를 대신해 임대차관리, 시설유지 등 일체의 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신탁 △부동산 관리와 처분을 신탁사에 맡기고 수익권 증서를 금융기관에 제출해 자금을 대출받는 담보신탁 등 유형이 다양하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것 역시 조합원들의 재산을 위탁받아 이뤄진다. 최근에는 아예 신탁사가 조합을 대신해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4년 안전행정부(현 행정자치부)가 세금 징수 업무를 원활하기 위해 신탁 부동산의 재산세 납세 의무자를 수탁자(신탁사)로 바꾼 뒤 현장에서는 혼란이 여전하다. 사실상 정부를 대신해 신탁사가 세금 징수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신탁 업계 관계자는 “재산세 과세가 이뤄지는 7월과 9월은 고객들에게 일일이 세금 고지서를 보내느라 다른 업무도 마비되는 상황”이라며 “그런데도 고객이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버티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종부세다. 종부세법에 따르면 종부세 납세 의무자는 지방세 납세 의무자를 따른다. 따라서 종부세법 납세자 역시 위탁자가 아닌 신탁자로 바뀌게 됐다. 종부세는 재산세보다 고객에게 받아내기가 어려워 부동산신탁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종부세는 과세 기준일이 6월 1일인데 납부기일은 12월 1~15일이면서 그 사이 고객이 신탁계약이 해지해도 종부세는 여전히 12월에 신탁자에 부여된다. 부동산신탁자로선 계약이 끝난 옛 고객을 찾아가 종부세를 내라고 독촉해야 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신탁 부동산에 대한 채납을 줄이기 위해 법을 개정했음에도 2015년 1월 기준 신탁재산의 종부세 체납액은 약 293억원(전체 부과금액 대비 17.5%), 재산세 체납액은 약 593억원(20.2%)에 달한다.
◇ 조합 사업비 증가…고액자산가 탈세에 악용되기도
재건축·재개발 조합 역시 사업비가 늘어나게 됐다. 고지·징수 업무를 대행하는 데 적지 않은 품과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업무 효율성을 위해 대다수 조합은 아예 사업비에 재산세·종부세 등 대납 비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사업비 증가와 이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고덕 그라시움) 재건축조합의 경우 이런 문제를 피하고자 총회를 통해 재산세·종부세의 납부 책임을 아예 조합원들이 각자 지도록 했다. 다만 이 경우 입주권 등을 매매할 때 재산세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채로 거래가 이뤄지면 결국 최종 소유자가 부당하게 세금을 부담하게 되는 억울한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납세 의무자를 수탁자에서 위탁자로 변경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그동안 재산을 분리신탁해 종부세를 회피해왔던 고액자산가들 역시 세금 부담이 껑충 뛰어오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상 종부세의 납세 의무자는 신탁사이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의 합산 공시가격이 일정 기준(주택은 6억원, 토지는 5억원, 상가나 사무실 부속토지는 80억원)이 넘어도 이를 여러 개의 신탁사에 개별 위탁하면 납세 의무를 피할 수 있었다. 일부 신탁사의 경우 법의 허점을 악용해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부동산관리신탁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노영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과세 대상 자산을 합산해 누진과세하는 납세체제를 갖고 있다”며 “실질적인 재산소유자를 간과하고 수탁자에게 납세 의무를 부여하면 이같은 원칙이 깨지는 만큼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