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하는 배우, 연기하는 마케터…'누구냐, 넌'

장병호 기자I 2017.07.20 05:30:00

뮤지컬 ''이블데드'' 연출가 임철형·배우 안영수
임, 연출 전공하다 뮤지컬에 빠져 배우로
''벽뚫남'' ''킹앤아이'' 등으로 대학로 누벼
안, 배우 꿈꿨던 공연홍보기획사 대표
연기 경험 살려 소통하는 마케터 목표
동명 공포영화 원작 뮤...

뮤지컬 ‘이블데드’의 연출가 임철형(오른쪽), 에드 역의 배우 안영수. 뮤지컬배우인 임철형은 9년 전 ‘이블데드’ 초연을 통해 연출가에 도전했다. 안영수는 공연홍보기획사 랑의 대표로 ‘이블데드’를 통해 배우 데뷔의 꿈을 이뤘다(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저는 제가 연출이 아닌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연출은 우연한 기회로 하게 된 거니까요. 신뢰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게 꿈입니다.”(연출가 임철형) “제 최종목표는 괜찮은 마케터가 되는 겁니다. 그 과정에 배우가 있다면 성실히 임할 생각이고요.”(배우 안영수)

최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뮤지컬 ‘이블데드’(9월 17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의 연출가 임철형(43)과 배우 안영수(42)를 만났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두 사람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다. 임철형 연출은 배우를, 안영수는 마케터를 각자의 최종목표로 내세웠다. “재미있죠? 연출이라고 만났더니 배우라고 하고, 배우라고 만났더니 마케터라고 하니까요(웃음).” (안영수)

임 연출은 서울예술단을 거쳐 뮤지컬 ‘페퍼민트’ ‘킹앤아이’ ‘벽을 뚫는 남자’ 등에 출연한 뮤지컬배우 출신이다. 9년 전 ‘이블데드’ 초연을 통해 연출가로 데뷔했다. 안영수는 뮤지컬 ‘난쟁이들’ ‘프랑켄슈타인’ 등의 홍보와 마케팅을 담당한 공연홍보기획사 랑의 대표다. 임 연출의 제안으로 에드 역을 맡아 배우로 데뷔했다.

△90년대 말 배우·마케터로 첫 만남

두 사람은 90년대 말 대학로에서 배우와 마케터로 처음 만났다. 임 연출은 “안영수 대표는 배우들 사이에서 인터미션 때 객석을 돌아다니며 입담으로 프로그램북을 파는 것으로 유명했다”고 회상했다. 안 대표가 삼성영상사업단이 설립했던 공연제작사 T&S컴퍼니에서 일할 때였다. 안 대표는 “프로그램북 10권을 팔면 한 권 값을 준다고 해서 인터미션에 공연장에 들어가 프로그램북을 팔기 시작했다”며 “배우가 된 것처럼 관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어릴 적부터 배우가 꿈이었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합격했지만 집안 반대로 진학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 포스터를 붙이는 일로 공연계에 뛰어들었다. 임 연출은 연출을 전공하다 배우로 방향을 튼 케이스다. 계원예고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다. 뮤지컬배우 남경주가 출연한 ‘가스펠’을 본 뒤 꿈을 바꿨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뒤 서울예술단을 거쳐 뮤지컬배우가 돼 대학로를 누볐다.

임 연출은 “안 대표가 배우 이상의 끼와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안 대표에게 배우를 제안한 이유를 설명했다. 안 대표는 공연을 망치거나 직원들을 챙기지 못할 것이 걱정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면 10년이 지나서까지 계속해서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작품 속 에드는 주인공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조연 캐릭터다. 등장 분량도 대사도 많지 않지만 존재감만큼은 확실하다.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네크로노미콘 댄스’에서는 출연 배우들과 함께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군무도 선보인다. 안 대표는 “연습 시작과 함께 주말도 빠지지 않고 매번 연습에 나왔다”면서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 만큼은 더없이 즐겁다”고 말했다.

뮤지컬 ‘이블데드’에서 에드 역을 맡은 배우 안영수의 공연 장면(사진=쇼보트).


△관객에게 공연 제대로 알리는 게 중요

친한 형·동생 사이인 두 사람이 ‘이블데드’로 뭉친 이유가 있다. 지금보다 더 많은 관객이 대학로의 공연장을 부담 없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블데드’는 동명의 공포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코믹 호러 뮤지컬. 그러나 공포보다 웃음을 강조한다. 영화 ‘라라랜드’ 패러디와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등장하는 등 젊은 세대가 좋아할 요소로 가득하다.

임 연출은 “요즘 계절로 표현한다면 우리 작품은 근사한 호텔 수영장보다 편하게 찾아갈 수 있는 근교의 계곡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대표도 임 연출과 같은 생각이다. 그는 “‘레베카’ ‘지킬앤하이드’처럼 고급스러운 뮤지컬, ‘쓰릴 미’ ‘키다리 아저씨’ 같은 잔잔한 뮤지컬이 있다면 ‘이블데드’처럼 신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뮤지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 두 사람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 중 하나는 공연장 분위기를 최대한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안 대표가 매 공연마다 색다른 안내 멘트를 선보이며 관객의 보다 흥미로운 관람을 유도하고 있다.

안 대표는 “요즘 공연 마케팅은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고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마케팅의 핵심은 관객에게 작품을 정확하게 소개하고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블데드’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다른 배우와도 더 소통할 수 있다 보니 마케터로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배우를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 연출은 앞으로 배우로서 보다 신뢰도를 쌓겠다는 각오다. 올해 초 매니지먼트 회사인 열음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은 그는 현재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에 캐스팅돼 배우 김윤석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임 연출은 “공연은 물론 방송·영화 등의 매체로 대중의 신뢰를 얻는 배우가 돼 동료들과 보다 안정감 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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