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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태동 10년째를 맞는 국내 PEF 업계는 걸음마를 떼고 막 걷기 시작했다. 일부 대기업 유동성 위기 현실화로 구조조정성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데다, 부채 비율이 과다한 공기업 역시 인수·합병(M&A) 시장을 달구고 있다. 국내 PEF 업계가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유다.
이재우(사진) PEF 협의회장은 28일 중구 한화빌딩에 위치한 보고펀드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국내 PEF가 대규모 대기업 구조조정이나 공기업 자산 매각에 참여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경제민주화를 위한 역할에 PEF는 확실한 기여를 할 정도로 성숙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국내 대형 PEF인 보고펀드의 공동 대표이자 2007년 창립한 ‘PEF협의회’ 2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PEF 협의회 등록이 가능한 GP(운용사·업무집행사원)는 국내 PEF운용사로 한정되며, 대략 60여개의 GP가 활동하고 있다. 국내 PEF를 운용하는 대부분의 GP가 가입한 셈이다.
PEF협의회는 주로 활동하는 30여 곳의 내로라하는 GP들이 주축이 돼 참여하고 있으며 정부에 업계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창구로도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이 대표는 “이번 규제 개혁에 PEF업계의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다“며 ”이번 정부의 규제 완화로 PEF업계의 성장이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회장은 국내 PEF업계가 분명한 우상향의 성장국면에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M&A시장 거래 규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기업의 참여 저조로 하락세를 그리고 있지만 지난해 국내 PEF의 투자 규모는 9조 3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집행했다. 대형 투자가 몰린 탓도 있지만 PEF 규모의 성장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국내 PEF업계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자기반성과도 같은 ‘쓴’ 평가를 내렸다. 그는 “국내 PEF 중 대형 M&A를 수행할 투자 여력을 많지 않다”는 거침없는 평가도 덧붙였다.
이 같은 평가의 근거로 그는 국내 펀드들의 규모를 들었다. 2013년 말 기준 국내 GP가 운용하는 펀드 수는 237개다. 총 약정금액은 44조원, 투자여력은 15조 9000억원이다. 단순 계산시 GP당 평균 투자 여력은 2600여 억원이다.
하지만 일부 대규모 해외 자본을 유치한 곳을 제외 하면 실제 가장 큰 규모의 블라인드 펀드 사이즈라 하더라도 5000억~6000억원 수준이다. 한 펀드 당 적어도 5개 이상의 포트폴리오를 담아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인수금융(차입)을 활용한다 하더라도 건당 2000억~3000억원 규모가 최대다. 그 이상의 투자는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공동 GP(Co-GP)를 구성해야 하는데 그렇더라도 투자 풀이 적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즉 조 단위인 우리은행이나 대우조선해양같은 대형 매물은 국내 PEF에게 버거운 사이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운용사의 경험 부족도 한 원인이다. 그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려 재매각해 수익을 내는 ‘모험자본’ 투자가 가능한 소위 ‘바이아웃(Buy-out)’형 GP는 국내 10여 곳 남짓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액상으로도 44조원의 PEF 약정액의 대부분이 중순위(Mezzanine)나 인수금융 등 사실상 최후순위인 주식보다는 대출(Debt)에 가까운 투자를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주축 투자자(anchor investor)인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은 보장성 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탓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 또한 연기금의 성격과 관리 시스템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연기금등 투자자 입장에서 순수 모험 자본 투자를 통해 많은 투자 수익을 돌려준 PE 운용사들이 나와 주면 상황은 달라 질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그렇게 내 놓을 만한 트랙 레코드를 가진 곳이 극 소수에 불과하다. 즉 투자는 많이 이루어졌지만 회수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모험자본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라고 묻자 PEF의 ‘교과서’ 다운 답을 흔들림없이 풀어냈다. 이 회장은 “모험자본을 늘리려면 투자 성공사례를 계속 만들어내는 방법 밖에 없다”며 “이를 위해 운용사들은 투자 약정액이나 집행액을 늘리기 보다 투자를 위한 사전 조사와 피투자사의 영업과 운영에 대한 역량을 집중해 가치를 증대시키고 회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고펀드의 투자팀도 10년 정도 펀드를 운영해보니 이제 감을 좀 잡은 것 같다”며 “이제는 투자 결정 전에 경영진 구성, 경영계획 등 밸류업(Value-up) 프로젝트를 미리 세우고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도 같다”는 소회를 풀었다.
PEF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토양이 어느 정도 마련된 요즈음 이 회장의 가장 큰 걱정은 시장의 커져버린 업계에 대한 관심과 기대다. 그는 “44조라는 거액이 투자 된 이 업계의 운용사 들이 모두 건전하게 영업 하면서 초과 수익을 내고 대체 투자의 한 축을 담당 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PEF 라고 하는 것이 고수익를 추구 하다 보면 때로는 일부 투자의 실패도 있을 수 있고 어느 산업에나 그렇듯이 소수의 불건전한 운용사도 나올 수 있다”며 “이럴 때 시장에서 어떻게 반응 할지”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또 침체된 자본시장과 보수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의 성장 전략이 PE 투자금의 회수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놨다.
이 회장은 “경제민주화를 위한 PEF의 역할은 확실한 것 같다”며 “국내 PEF가 활성화 됨에 따라 새로운 자본 공급자로서의 주체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M&A를 통해 대기업 및 공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도울 뿐 아니라 중견·중소 기업 가치 증대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기업의 성장을 도우면서 일자리도 더 많이 만들어 지게 될 것”이라고 PEF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