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분양 이대로 괜찮나]"샘플만 보고 살게요"…웃지못할 선분양史

박종오 기자I 2013.12.24 07:01:00
[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샘플만 써봐도 알아요.” 한 화장품 업체의 유명한 광고 문구다. 샘플(견본)만 써보고 물건을 구입하는 건 화장품 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의 70~80%를 차지하는 집도 말뚝(견본주택)만 보고 줄 서서 산다. 선분양 제도가 만들어낸 웃지 못할 풍경이다.

선분양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는 1977년 처음 제도화됐다. 당시 선분양 제도를 도입한다는 내용이 주택법에 포함된 이후 이듬해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는 당시 ‘주택 공급에 관한 규칙’에서 사업자가 집 지을 땅을 확보한 뒤 대한주택보증의 분양보증을 받으면 완공 전에도 분양할 수 있도록 했다. 집값의 80%까지 계약금과 중도금 명목으로 미리 내게 한 것이다.

이런 방식이 도입된 것은 당시 집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때만 해도 집 사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민간 금융이 발달하지 않아 건설사들이 사업자금을 빌리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소비자가 낸 분양 대금을 건설비로 쓸 수 있도록 예외규정을 만들어 공급을 촉진했다. 1년 전인 1977년부터 실시된 분양가 규제에 대한 반대 급부로 건설업체에 제공한 일종의 ‘당근’이기도 했다.

선분양 제도는 ‘굿모닝시티 사건’으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2001년 사업 진행자인 윤모씨는 서울 동대문운동장 앞 계림건물 부지에 상가를 짓겠다며 선분양을 하고 분양 대금을 횡령했다. 피해자 3442명, 피해액만 3700억원에 달한 초대형 분양 비리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이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맡아 민주당 정대철 대표가 구속되는 게이트로까지 번졌다. 이 사건은 결국 2005년 오피스텔·상가에 후분양제가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상가와 달리 아파트 선분양은 비교적 안착했다. 2006년 실시된 ‘로또’ 판교신도시 분양은 지금도 입길에 오르내릴 만큼 대단한 이목을 끌었다. 모델하우스와 은행 창구 등 현장 접수가 아닌 인터넷 청약 접수를 원칙으로 해 수요자들은 모델하우스 없이 TV나 인터넷 화면만 보고 청약해야 했다. 하지만 9428가구 모집에 청약 통장 보유자 5명 중 1명꼴인 무려 46만7529명이 몰렸다. 청약 경쟁률은 평균 135대 1, 최고 2073대 1을 기록했다. 포털사이트와 부동산 정보업체 홈페이지 등 사이버 모델하우스 9곳의 방문자만 1570만명에 달했다.

선분양의 반대 격인 후분양 제도는 서울 은평뉴타운에 도입된 바 있다. 은평뉴타운은 2006년 분양을 앞두고 고분양가 논란에 휘말리면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해결책의 하나로 공정률 80% 선에 분양하는 후분양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분양가는 3.3㎡당 평균 10.25% 낮아졌다. 하지만 계약 뒤 잔금을 치르기까지 기간이 짧아 청약자의 자금 부담이 커지는 등 단점도 적지 않아 미분양이 발생했고 실효성 논란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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