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기금 출범을 앞두고 정부가 대대적인 채무탕감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채무자가 급증하고 있다. 장기연체자를 구제하려는 정부의 지원대책이 자칫 모럴해저드를 조장하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아파트 분양자들이 입주를 위해 은행에서 빌린 집단대출의 연체율은 지난 1월에 2.0%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3개월 이상 채무 불이행자는 지난 1월말 123만9000명이며 이중 6개월 이상 채무불이행자가 90%를 넘는다. 신용회복위원회가 신용불량자의 채무 장기분할 상환을 유도하는 신용회복 프로그램에는 당초 114만명이 신청했으나 30만명(26.3%)이 중도 탈락했다.
연체율이 높아지고 상환 포기자가 속출하는 것은 새 정부의 지원대책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꼬박꼬박 대출금을 갚으면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빚을 안 갚는 게 상책’이라는 심리가 급속히 퍼진 결과다.
물론 이런 기대심리는 대부분 근거가 없다. 집단대출만 하더라도 하우스푸어와 관련한 지원대책에 포함될 지 불투명하다. 포함돼도 대출금 감면은 아니라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정부는 행복기금의 지원 대상을 ‘2월말 현재 6개월이상 연체한 경우’로 정했다. 그러나 1월말 현재의 연체율이 이 정도라면 ‘고의적인 연체’가 2월까지 더 높아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모럴해저드를 최소화하려면 지원 기준일을 지난해 연말로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에 대해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지원대상은 스스로 자활의지를 갖고 채무탕감을 요청한 사람중에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째라’는 식으로 버티는 채무자가 늘면서 금융권이 채권회수에 애를 먹고 있다. 심해지면 돈을 빌리면 반드시 갚아야 하는 금융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버티는 사람이 혜택을 보게 된다면 상당히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채무자나 빚을 질 능력조차 안되는 국민들은 역차별을 받게 된다.
정부가 대통령의 공약을 조기에 실행하는 데 주안점을 두다 보면 지원대책에 빈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속도를 지나치게 압박해서는 안된다. 또 성실한 채무자에 대한 지원책도 검토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