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지난주 급등세로 마감했던 뉴욕 증시가 새로운 주에 들어서자마자 급락했다. 급등의 이유도 유럽연합(EU)정상회의 결과요, 급락의 이유도 EU 정상회의 결과로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EU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신(新) 재정협약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잇달았다. 시장은 재정위기 해결을 위해 EU 회원국들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을 좋게 봐줬다. 하지만 이는 이내 회의론으로 바뀌었다. 당장 위기의 급한 불을 끄기엔 모자란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잠잠했던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피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12일(현지시간) 일제히 혹평을 쏟아냈다. EU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해법들로는 위기 극복은 고사하고 신용등급 강등 위험도 벗어나기 어려우리라는 것.
키스 스프링거 스프링거파이낸셜자문 대표는 "계절적으로 산타클로스 랠리를 맞아야 할 시점이지만 우리는 이를 잡을 시간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정책 입안자들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주길 거부했다"고 비판했다.
산타랠리는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연말과 신년 초에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기대를 모았던 EU 정상회의도 결국 위기 확산 우려를 잠재우는 데 실패하면서 시장은 마지막 구원투수인 유럽중앙은행(ECB)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때마침 EU 정상들이 새 재정협약을 통해 역내 재정통합의 기반을 마련했으니 이제는 ECB가 본격적으로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비트 시젠탈러 UBS 통화담당 스트래티지스트는 "EU 정상회의 이후 다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기가 꺾인 느낌"이라며 "사람들은 ECB의 채권 매입과 같은 더 거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ECB가 재정불량국들의 국채를 제한 없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들 국가의 재정 자립을 돕고, 위기 확산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더해 유럽 각국이 허리띠 졸라매기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외부 지원도 지원이지만 강력한 긴축을 통한 내실 다지기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 다만 경제 성장 둔화라는 부작용을 극복하는 게 숙제라는 지적이다.
필립 지젤스 BNP파리바 포르티스 리서치 헤드는 "긴축정책들은 경제 성장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이는 내년 유럽 각국 경제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