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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CEO 릴레이 기고)④"한국 게임산업, 진정한 봄을 기다리며"

류의성 기자I 2008.06.12 10:30:00

권준모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겸 넥슨 CEO

[이데일리 류의성기자] 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봄 같지가 않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한나라 때 흉노에게 시집간 중국 4대 미인 왕소군을 노래한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한국 게임산업의 현재 상황을 생각하며 이 고사가 문득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견해의 차이는 있겠지만, 게임산업의 생명력을 100년 이상으로 본다면 분명 현재 한국의 게임산업은 양적, 질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룬 따사로운 봄임이 틀림없다.

2007년 기준으로 넥슨, NHN, 엔씨소프트, CJ인터넷, 네오위즈게임즈 등 국내 메이저 온라인게임사의 지난해 매출 합계는 1조2600억 원 가량으로 전년보다 24.9% 성장해 전 세계 온라인 게임 시장 성장률 18%(85억 달러=약 8조원)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국내 온라인 게임 시장이 여전히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게임 산업이 봄은 커녕 여름, 가을을 모두 지나쳐 이미 추운 겨울로 접어든 게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우려의 이유로 치열한 국내 게임 시장 환경, 일부 게임 1세대 업체들의 실적 부진 및 피인수, 글로벌 게임 회사들의 온라인 게임 시장 진출, 사행성 게임이 촉발한 게임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등을 거론한다.
 
물론 이러한 한국 게임 산업의 위기 요소들 중에는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명 한국의 게임 산업이 여러 내·외부적인 요소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해결책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내강외유’형 게임업체로의 변신

다소 식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한국 게임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내 게임업체들의 근본적인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 바로 ‘내강외유(內剛外柔)’형 기업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내강’이란 게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개발력과 해당 게임을 서비스하는 데 필요한 서비스의 수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게임 장르와 소재에 뒤따라가는 게임만을 제작하거나 게임 출시 이후 게임 이용자들과의 치열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한 서비스 질의 향상을 꾀하지 않는다면, 미국, 유럽, 일본 등의 기존 게임 강국들과 중국과 같은 신흥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외유’란 개발한 게임을 가지고 사업을 벌여나가는 데 있어 필요한 유연한 사고를 뜻한다. 지금과 같이 치열한 국내외 시장 상황에서 단순히 국내에서 게임을 서비스해 벌어들이는 수익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힘들 뿐 아니라 거대 자본을 확보한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
 
제품 라이선스 사업, TCG(Trading Card Game), 애니메이션, 테마파크, IGA(In Game Ad) 등과 같이 게임이라는 IP(Intellectual Property)를 기반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꾸준히 개발해나감과 동시에 해외에서의 게임 서비스, 해외 업체와의 공동 개발, 해외 개발 스튜디오 인수, 지분 투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게임 업체들에게 있어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적인 문제다. 유연한 사고는 이러한 사업다각화와 해외 진출 통해 수익원을 다변화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경쟁력이라 할 수 있다.

◇게임 인식 제고..종합적 투자 이끌어 내야

그전에도 그리 좋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특히 지난 2006년 바다이야기 사태로 인해 게임 산업은 높은 부가가치와 성장성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략산업으로서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인정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여론도 육성보다는 규제 쪽에 힘이 실리게 되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적지 않다.

여러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현재, 한국 게임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게임 산업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투자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한 투자란 금전적인 투자만이 아닌, 우호적인 언론 환경, 우수 인재의 게임 업체 지원 등의 다양한 의미의 투자를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종합적인 함의의 투자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게임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제고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인식 제고를 위해 정부, 언론, 기업, 시민단체, 게임 이용자 등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단위 조직들이 변화해야 하지만, 특히 한국 게임산업협회를 필두로 한 게임 업체들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 게임산업협회는 게임에 대한 인식 제고와 올바른 게임문화 보급을 위해 국산게임의 e스포츠화를 적극 추진해 건전한 생활 밀착형 e스포츠의 확산을 유도함은 물론, 조손세대가 함께 즐기는 게임 축제 “1080 게임한마당”을 지속적인 개최하고, 부모와 자녀가 게임이라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대화하며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녀게임이용 가이드북’을 발간하는 등 다양한 활동들을 펼쳐왔다. 또한 SIM(Social Interactive Media)로서의 게임이 갖는 순기능과 역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등 게임 인식 제고를 위한 이론적 기반도 마련해 나가고 있다.

게임업계가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 지금은 게임 산업의 이미지가 상당히 개선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도 사회 전반의 종합적이고 집중적인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사회의 여러 구성원들이 게임과 게임 산업을 이해하려는 관심과 노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게임산업 활성화..정책적 지원 시급

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지원과 규제 완화 또한 국내 게임 업체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게임 산업 중에서도 특히 온라인 게임 산업은 문화콘텐츠 전체 수출액의 4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문화 산업의 핵심분야로, 한류의 중심 지역인 아시아 대상 수출액의 경우 만화, 음악,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을 포함하는 5대 문화콘텐츠 중 82.7%를 차지했다. 또한 온라인 게임 산업은 영업이익률은 주요 제조업체의 4배에 달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자원 빈국에 있어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이끌 수 있는 차기 사업 분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산업적인 위상에 비해 지금까지 이뤄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바다이야기 사태가 키워낸 게임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한동안 적극적인 육성보다는 규제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일정 부분 이해된다.
 
그러나 다양한 자국업체 보호 정책, 세금면제 제도 등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 최근 몇 년간 눈부시게 성장한 중국 게임 업체들이 온라인 게임 태동기 때부터 지금까지 세계 시장을 이끌어 온 한국 온라인 게임 산업을 위협하고 있는 현 상황을 봤을 때,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되는 시점이다.

우선, 국내 소규모 개발 스튜디오의 독자적인 해외 진출의 길을 열어준 GSP(Global Service Platform) 사업이나 서울시 디지털콘텐츠 펀드 결성과 같은 정부 차원의 직·간접적인 투자가 대폭 확대돼야만 한다. 또한 게임 산업 활성화를 가로 막고 있는 여러 규제 관련 법률들의 개정과 개발 관련 R&D 비용이 높은 산업 구조를 감안한 세제 지원 정책 등도 국내 게임 업체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절실히 필요한 지원책들이다.

(권준모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 겸 넥슨 CEO)
 
이 글을 쓴 권준모 한국게임산업협회장은 1995년부터 경희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2001년 모바일 게임업체인 엔텔리전트(현 넥슨모바일)를 설립했다. 넥슨과 합병한 이후 지금은 넥슨과 넥슨모바일 대표 및 한국게임산업협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용하면서도 특유의 친화력과 추진력으로 직원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사내 뿐 아니라 게임업계에서도 `젠틀(Gentle)한 CEO`로 인기가 높다. 서울대를 나와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난해 9월에 열린 국제게임개발자회의(ICON2007)에서 발표한 '한국 게임 파워25'에서 게임업계 최고의 파워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동안 `게임CEO 릴레이 기고`를 연재해 주신 분들과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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