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전환과 산업의 탈탄소화를 연구해 온 세계적 권위의 연구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을 돌며 진행하고 있는 각국의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에 대한 연구에서 한국이 흥미로운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데일리는 1일 연구차 한국을 방문한 다라 오루크(Dara O‘Rourke)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약 1시간에 걸쳐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미국 내 외국인 투자자 1위 국가가 한국이다. 미국의 전환이 한국에 크게 의존하게 된 만큼 (미국의 학자로서) 한국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여기에 한국 내부는 전환이 지연되고 있는 점도 흥미로운 주제였다”고 말했다. 덴마크·독일 등 주요국 다음으로 그가 찾은 한국은 산업발전과 산업정책으로 고속성장을 한 놀라운 국가였다. 한국의 기업들은 정치·경제적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지속가능한 전환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고 봤다. 그는 “한국 기업들은 세제 혜택과 보조금, 시장성이 풍부한 미국·유럽을 적극 공략하는 중”이라면서도 “고탄소·고비용의 에너지로 생산해야 하고 시장도 협소한 국내에서는 제대로 힘을 펼치지 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같은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 전략에 대해 그는 한국이 5년 단기의 정책수립으로 장기적 계획이 부재하고, 에너지 시장이 정치화한 것이 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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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지속가능성 전환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데, 주로 산업계에서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전환을 살펴보고 있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에서 연구를 해왔고, 아시아에서는 중국, 한국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포스코, 현대차·기아, LG화학 등 주요 기업의 지속가능성 부문 담당자들과 정책연구기관, 학자들을 두루 인터뷰했다. 한국은 산업 발전과 산업 정책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 놀라울 정도로 성공했다.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에 있어서도 미국 내 외국인 투자자 1위다.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히트펌프 등에 대한 한국의 미국 내 투자 규모를 보고 정말 놀랐다. 한국 기업들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전환은 한국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한국을 주목하게 된 이유다.
-이미 둘러 본 독일이나 덴마크 등과 한국의 차이점은.
△한국은 해외에서는 매우 빠르게 가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상당히 느리게 가고 있는 것 같아서 놀랐다. 한국의 국내 정책은 재생에너지 발전과 전기차, 저탄소 철강 발전에 뒤처져 있다. 한국의 국내 에너지 전환은 매우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생에너지 비율이 최하위다. 한국 정부는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새로운 에너지 성장과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한국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국내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이유라고 생각하나.
△몇 가지 요인이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인센티브와 더불어 미국·유럽은 친환경 부문에 매우 큰 시장이다. 해외 성장 잠재력이 높다. 그리고 국내 재생에너지 건설의 한계는 한국 제조업을 위험에 빠뜨린다.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공급업체에 100% 재생에너지로 생산할 것을 요구하는데 현재 한국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탄소국경 조정 메커니즘(CBAM)은 한국 제품의 가격을 인상할 것이다. 그래서 재생에너지가 이렇게 저조한 상태에서는 글로벌 그린화가 한국 국내 제조업에 타격을 줄 위험이 있다.
-한국 정부의 CF100,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관심이 있나.
△어떤 기업이나 주요 국가에서도 CF100(무탄소에너지 100%)에 대한 관심을 본 적이 없다. 일부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정부와 논의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전 세계적인 모멘텀은 모두 재생 에너지다. 현재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은 시스템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자력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미 원자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끄지 말고 계속 켜서 가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원자력을 지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정치인이나 기업이 공개적으로 원자력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국 정부가 전 세계가 CF100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CF100에 대한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다. 또 태양열과 풍력, 배터리 비용이 매우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과 달리 원전은 여전히 매우 비싸고 매우 느리다. 최근 10년간(2012~2022) 이들의 가격은 태양열 80%, 배터리 80% 떨어졌다. 매우 급격하다.
-한국 에너지 전환은 왜 지연되고 있다고 보는가.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에너지 시장이 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인위적으로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한 에너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산업이 이에 의존하게 됐고, 한국 소비자들도 낮은 전기료를 좋아한다. 한국의 에너지 기관들은 매우 어려운 재정 상황에 있다. 또 한국전력이 모든 원자력 발전소와 대부분의 석탄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현재 전력 생산 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민영화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 친환경 에너지의 성장을 위해 시장에서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에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 석탄과 원전이 경제성이 있는 것은 정부 보조금 때문이다. 시장에서 경쟁했다면 저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고탄소 집약적 경제로 급격한 전환이 어렵다.
△철강, 화학, 해운, 반도체 등 고탄소 집약적 산업들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전 세계적으로 ‘경감하기 어려운 산업’이란 표현을 썼다. 그러나 지금 전 세계에서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지금 우리는 각 부문에 대한 주요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가지고 있다. 스마트 산업 정책을 적용해 20년 후를 내다보고 미래를 향해 산업을 이끌고 있다. 신기술 산업에 대한 정부 보조금, 정부 구매 등으로 비용이 충분히 낮아질 때까지 녹색 프리미엄을 주고 성장하도록 유도한다. 그런데 한국 정책은 실수를 하고 있다. 용인에 약 1000억 달러를 투입해 IT 클러스터를 조성해 수출용 슈퍼 스마트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모든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6개의 천연가스 발전소를 건설한다고 했다. 성장하고 있는 새로운 하이테크 산업을 가격 변동성이 크고 가격이 빠르게 내려가지 않는 오래된 에너지에 맡기는 것은 실수다.
-한국의 정책 특성이 매우 단기적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금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돼 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에너지 문제가 한국에서 굉장히 정치화돼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원전을 줄이겠다고 하더니 윤석열 정부는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기술적 정책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이 강하다. 찬성과 반대를 놓고 싸우고 있을 때 합리적인 장기 에너지 정책은 나오기 어렵다. 한국의 농촌 지역은 인구 감소와 소득 감소로 실질적인 위험에 처해 있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 클러스터와 IT 클러스터가 서울이나 수도권에만 집중되지 않고 전국 각지에 균형 있게 배치될 것인가. 어려운 문제지만 한국 정부가 지역의 근로자들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도 고려하면서 전반적인 친환경 전환에 대해 20년 이상의 장기계획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다라 오루크(Dara O‘Rourke) 교수는
△매사추세츠(MIT) 공과대학 졸업 △UC버클리 석ㆍ박사 △월드뱅크ㆍ유엔개발프로그램(UNDP)ㆍ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문위원 △굿가이드(GoodGuide) 설립자 △MIT 도시계회과 교수 △UC버클리 환경과학정책관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