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 한국국제경제학회장(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은 13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올해 상반기까지는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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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우리나라는 경기 침체에 대해 심하게 우려하고 있지만, 미국은 다르다”면서 “미국은 경기가 좋아 이자를 더 올려도 괜찮으며, 미 연준도 물가 안정에 더 강한 시그널을 주고 있다”고 깡조했다. SVB 파산 사태 여파로 기준금리를 한 번에 50bp(1bp=0.01%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은 힘들어도, 최소한 베이비스텝(한 번에 25bp 인상)을 밟아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은의 통화정책도 당분간 물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공공요금도 더 올려야 하는데 안 올리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끝나지 않은 만큼 물가 상승세가 더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SVB 파산 사태와 관련해서 국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면서도 제도적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 교수는 “SVB의 경우 장기 채권에 주로 투자를 하면서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른 투자행태”라면서도 “다만 이번 사태처럼 예금 인출이 순식간에 벌어지는 시스템에서 정부가 위기 대응에 빠르게 나설 필요가 더 커졌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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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실버게이트, 실리콘밸리은행(SVB) 등 은행들이 연쇄 파산하며 전 세계적으로 혼란이 번지고 있다. 국내에 미칠 영향은 어떻게 보나.
△시대가 바뀌면서 하루이틀 사이에 예금이 인출될 수 있는 시스템이 돼 버렸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기가 더 빠르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장기 국채에 주로 투자를 하면서 유동화를 빨리 시킬 수 없는 영향이 컸다. 우리나라의 금융구조는 이와는 성격이 달라 현재로서는 국내 파급효과가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위기에 더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생겼고, 국내 예금에 대해 보장해주는 한도도 현재 5000만원에서 확대하는 등 제도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SVB 사태로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속도를 늦출 수는 있지만, 인상기조는 계속 될 것으로 본다. 미국의 경우 경기는 좋고 물가는 아직 높은 수준이다. 이자를 올려서 ‘강달러’가 된다고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미 연준에서도 물가 안정에 대한 확실한 시그널을 주고 있다.
-만약 올린다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릴 것으로 전망하나.
△지금 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베이비스텝을 밟거나 (SVB 사태 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면 한 번 정도 쉴 수는 있다. 그런데 (인상) 기조는 유지할 것이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계속 갈 것이다.
-한은이 금리를 동결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데.
△우리도 여전히 물가를 최우선으로 봐야 한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더 중요한 건 우리나라는 지금 공공요금을 올려야 할 걸 못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공공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진행형인 만큼, 고물가는 더 갈 수밖에 없다.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소비 시장이 얼마나 활성화되느냐가 관건인데, 물가가 급격하게 오를 정도로까지는 아닐 것 같다. (하반기에는) 3%대까지는 내려올 것으로 본다.
-우리 경제의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은 여전히 유효하나.
△당초 예상보다 ‘상저’ 현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날 것으로 본다. 무역수지 적자나 부동산 상황 등으로 지금보다 경기가 더 심화할 것이다. 지난해 말까지는 금리를 이렇게까지 올리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미국 경기가 생각보다 좋아지니까 금리를 더 올리게 되고 우리도 같이 올릴 수밖에 없게 됐다. 하반기에도 ‘하고(下高)’라고는 하지만, 상반기보다 조금 낫다는 것이지 경기 자체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에서는 물가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정책 기조를 경기 대응으로 전환한다고 했는데.
△경기 대응이라고 해도 정부가 재원을 투자하는 식의 경기 대응은 올해는 어려울 것이다. 재정 지출을 늘리는 형태의 부양책을 써서 물가가 또 오르면 결국 의미가 없어진다. 결국 물가가 안정된 수준이 된다면 경기 대응을 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든 재정 지출을 늘리거나 추경을 하는 건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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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구조조정을 해서 기존에 있는 재원을 활용하는 등 정부 지출을 늘리지 않는 타겟팅 방식이 필요하다. 물가 상승 때문에 실질 소득이 떨어지고, 코로나19 회복 이후 해외여행 수요가 늘면서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상황에서 재원을 추가로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소비 쿠폰을 준다거나 자영업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법밖에 없다. 올해 상반기 경기가 안 좋은 이유가 정부가 경기 진작 정책을 쓸 수 없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 진작 효과에 비해 물가 상승 효과가 더 커서 서로 상쇄된다면 의미가 없다. 정부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의 경우 단계적으로 정상화한다고 했는데.
△정부에서 공공요금에 대한 로드맵을 줄 필요가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제 때 원가 반영을 해오지 않았던 것을 한꺼번에 올리면서 서민들에게 ‘요금 폭탄’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4~5년간 어떤 식으로 요금을 인상을 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물가가 한창 오르는 상황에서 공공요금을 더 얹혀서 올리는 건 정부의 역할이 아니다.
-최근까지의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처음에는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공공요금을 올린다고 했을 때 ‘왜 이러는가’ 싶었다. 국민이 힘들 때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게 정부 역할이다. 민간 회사가 적자 나면 파산할 수 있지만, 정부는 견딜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공공요금 인상시기를 늦춘 건 잘한 결정이라고 본다. 다만 현재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다는 건 우려된다. 지출을 늘리는 경기 부양책은 금리를 올리는 고통만 심하게 하는 것이어서 쓸 수 없는 카드다. 다만 자영업자나 저소득층, 청년층을 타겟팅한 정책 방향은 좋다. 괜히 포퓰리즘 식으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