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결국 美보조금 신청할 것…韓정부, 리스크 막아줘야"

이준기 기자I 2023.03.06 06:00:00

[스페셜리포트]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장악 위해…발톱 드러낸 美
삼성전자·SK하이닉스, 보조금 신청 ''주판알 튕기기''
원천기술 가진 美 무시 못 해…韓정부 외교력 ''절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가 자국 내 반도체 생산 보조금 신청을 받으면서 부과한 여러 조건을 뜯어보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목적이 역내 반도체 제조공장을 확보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보조금 지급을 통해 중국의 반도체산업 발전(굴기)을 견제하는 한편 역내에 반도체 제조기업을 유치해 공급망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유치한 반도체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사용하려 한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對中 투자 제한은 약과…예상치 못했던 지뢰밭

이번 미국발(發) 보조금 사태는 우리 기업들로선 예상치 못했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해 8월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지원법의 핵심은 역내 반도체 제조시설 건설 때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과 설비·장비 투자액의 25%까지 세액 공제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 기업을 포함한 중국계 자본의 기업은 대상에서 제외됐고, 수혜를 입은 기업은 향후 10년간 대중(對中) 신규 투자 및 투자 확대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국 내 메모리반도체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며 미국에 신규 투자를 추진 중인 우리 기업에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향후 중국 공장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에 대한 전략적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구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먼저 보조금을 받으려면 투자 계획과 현금 흐름, 예상 매출 수익률 등을 신고해야 한다. 기업에는 기밀과 다름없는 중요한 재무정보와 미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 정보가 포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울러 1억5000만달러(약 1950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앞서 신고한 예상 수익 이상의 이익이 발생하면 받은 보조금의 최대 75%를 환원해야 하는 초과이익 공유제까지 들이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지원법 서명 행사에 참석한 모습. (사진=AFP)
◇결국 보조금 신청하겠지만…정부가 적극 나서줘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을 비롯한 외국 기업으로선 ‘우리 자금을 투자해 미국에 공장까지 건설했는데 보조금을 받기 위해 굳이 기업 정보를 미 정부에 알려줘야 하는가?’, ‘게다가 예상보다 초과 수익이 발생하면 받은 보조금도 일부 환원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 사이에선 경영 침해가 지나치다는 하소연까지 쏟아지는 실정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조금을 받아도 남는 게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국이 중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도 “미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보면, 그저 황당할 뿐”이라며 “이 정도의 조건이면 자유시장경제에 어긋나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따라서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보조금 신청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바이든 행정부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반도체 제조 관련 원천기술의 상당 부분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탓이다. 즉, 보조금 신청 조건이 우리에게 다소 불리하더라도 우리 기업은 신청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처럼 우리 기업이 어쩔 수 없이 보조금을 신청하더라도 보조금 조건을 완화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 실익을 더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이는 기업 차원에서 미국 정부에 요청하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우리 정부의 역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반도체 지원=대기업 특혜? 그릇된 인식 바꿔야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지원법으로 국내·외 기업을 유치,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상황은 어떠한가. 반도체가 우리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면서도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지원은 인색하다. 왜냐하면, 반도체산업은 대기업만 참여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발전했고 그 과정에서 대기업만 주목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반도체산업 생태계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건 더욱 많은 수의 중소기업들이다. 반도체 기업 지원이 비단 대기업 지원만은 아니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 올린 메모리반도체 강국 지위도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 결국, 우리 반도체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가 메모리반도체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국내 반도체 생태계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국내외 반도체 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을 포함한 경쟁국보다 과감한 수준의 정책 지원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왼쪽) 평택 반도체 공장과 SK하이닉스 이천 본사.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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