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유럽서 실패한 가격 지지정책…중증환자 연명의료하자는 양곡법 개정

조용석 기자I 2023.01.17 05:00:00

[전문가와 함께 쓰는 스페셜리포트]①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쌀 초과 생산량 의무매입 강제한 양곡관리법 개정
잉여쌀 매입 위해 2026년 이후 조단위 예산 소요
쌀 시장격리 비용으로 중요 농업예산 축소 ‘불 보듯’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야당이 강하게 밀어붙여온 쌀 시장격리(정부 매입)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결국 제동이 걸렸다. 법사위가 개정안을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 회부하기로 결정하면서 여야는 다시 한 번 논의 절차를 밟게 된다. 본회의 상정까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사실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유사한 쌀 가격 지지 정책은 이미 지난 2011년 태국에서 시행됐다가 실패했다. 당시 태국 정부는 시장가격보다 50% 높은 가격에 쌀을 매입했다. 이후 태국의 쌀 생산량은 연 20% 이상 증가했고, 2년 만에 약 4조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했다. 문제는 쌀 수출이 30% 감소하는 등 쌀산업의 경쟁력도 악화했다는 점이다. 정부 매입용 쌀 생산을 늘리다 보니, 벼 재배 농가들이 고품질 품종보다 다수확 품종 재배를 늘렸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낮은 농업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려 1962년 ‘유럽공동농업정책(CAP)’을 통해 버터·쇠고기 등의 최저 가격을 보장했다. 하지만 이는 생산 과잉, 가격 추가 하락, 농가소득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농업예산이 늘어나면서 정부 재정은 크게 악화됐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수확기 초과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의 3% 이상 또는 쌀값이 평년 대비 5% 이상 떨어지면 초과 생산량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한 마디로 정부가 초과 생산된 쌀을 다 사들이라는 것인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과거 유럽, 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쌀값 안정을 통해 벼 재배농가의 쌀값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쌀 산업의 안정적 기반을 확보하려는 취지는 이해한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 부담, 벼 농가 및 재배면적 증가로 인한 정책 효과 반감 등이 우려돼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중증 환자(쌀 산업)를 살리기 위한 원인 치료가 아니라, 정부 보조금에 기대 생명만 부지하는 연명의료가 될 수 있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개정안이 통과돼 시장격리가 의무화되면 2022년 25만톤이었던 쌀 초과 생산량이 2030년 64만톤으로 2.5배 늘어날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가 쌀 매입에 들이는 예산은 2022년 6000억원에서 2030년 1조 4000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 쌀값을 안정시키려면 수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다. 벼 대신 밀, 콩, 가루쌀 등 전략작물 재배를 유도하고, 소비 촉진을 위해 쌀 가공산업 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수출 전략상품 개발,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통한 해외소비 확대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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