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컵에 대해 보증금제도를 적용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최초다. 세종과 제주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선도적으로 시행한 지난 한 달, 매장 당 하루 평균 9개꼴로 반납이 이뤄졌다. 저조한 성과다. 다만 보증금 반납 처리가 8주 이내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약 4~5주간 반납 실적은 실태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환경부는 실제로는 20~30%의 반납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회용컵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데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지만, 환경 영향을 줄이도록 의무가 부가되는 주체의 반발은 필연적이다. 특히 주요 원인이 기형적인 제도라면 정책은 희화화될 뿐 정책 수용성은 먼 이야기가 된다. 순환경제의 기본은 생산단계에서 재활용·재사용을 고려해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정책 역시 설계 단계에서 재활용 가능성을 고려해 만들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논란의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세 가지 문제를 짚어봤다.
|
일회용컵은 재활용이 쉽지 않다. 재활용 원료로 저품질이다. 오염을 제거해야하고, 종이컵은 플라스틱 코팅을 해리(분자가 분해되는 것) 처리해야하며 보증금제 부착 라벨도 제거해야 한다. 종이컵은 물론 플라스틱 음료컵은 별도의 공정을 거쳐야한단 이야기다. 처리비용이 재활용 원료로의 판매 수익을 초과하는 상태다. 3곳의 재활용 업체와 2곳의 회수 업체가 현재 세종과 제주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은 제도 운영 재원은 ‘미반환 보증금’이다.
문제는 제도가 정책목표를 달성할수록 이같은 회수·재활용 업체의 손해를 메우고 대상 매장을 지원하는 재원인 ‘미반환 보증금’은 마르게 된다는 점이다. 일회용컵 회수율이 오를수록 미반환 보증금은 줄어드니 제도 운영 기반이 흔들리는 ‘예견된 아이러니’다.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정책 목표는 회수율 90%다. 일회용컵을 재활용하겠다고 만든 제도인 만큼 결국 처리비용은 종량제봉투제처럼 일반회계 등에서 충당하거나 보증금 인상 수순으로 밟을 공산이 커 보인다. 그러나 재활용은 국가·지자체의 책임이 없어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데 대한 근거가 없고, 보증금 인상은 저항이 높아 더 쉽지 않은 문제다.
②생산자 부담 사라지고 소상공인 열정페이로
일회용컵은 폐기물부담금 대상이다. 그러나 보증금제 대상 일회용컵은 이런 생산자의 폐기물부담금 부담을 없애고, 보증금제 대상 사업자들에게 회수체계에 대한 부담을 지게 했다. 즉 소상공인들이다. 생산업자는 재활용 의무에서 제외되고, 최종 유통업자에게만 의무를 부가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매장에서는 컵을 ‘수거’하고 ‘세척’하고, 마개와 컵홀더를 ‘분리’해 종이컵과 플라스틱컵을 따로 모아 회수 업체에 전달한다. 이를 ‘수거-회수-선별-재활용’의 통상 재활용 단계에서 보면 사실상 ‘수거, 선별’ 업무를 이들이 담당하는 셈이다. 세척은 소비자 의무이지만, 씻지 않았다고 안 받을 수 없는 노릇이다. 회수 업체들은 일정량 이상 모였을 때 회수 신청을 받기 때문에 작은 매장에선 ‘보관’도 사소한 문제는 아니다. ‘한국형’ 재활용 시스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선례없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전에 없던 재활용 업무가 더해지니 반발이 거센 건 당연했다. △라벨 제작비(개당 6.99원) △간이회수기 지원 △카드수수료 △회수 처리지원금(표준용기 사용시 개당 4원) 등이 지난해 5월 이후 매장 지원방안 논의를 거쳐 도입됐다.
③버리기엔 아까운 300원…다른 매장으로 발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정책이 정착될 수 있을지 여부다. 아직 제도 시행 초기이긴하나 가격 인상 효과에 따른 소비 위축 현상이 나타나면서 우려가 나온다.
보증금제 대상인 다회용컵과 빈병 등과 비교해보면 일회용컵 보증금제는 소비를 회피할 요인이 더 크다. 다회용컵은 보증금이 높은 만큼 반환율(보증금 1000원, 회수율 80%)도 높지만, 반환하지 않더라도 개인컵으로 재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일회용컵은 가정에선 거의 쓰레기일 뿐이다. 300원이 고스란히 가격 인상으로만 여겨질 공산이 크다는 말이다. 아울러 빈병(보증금 150원, 회수율 63%)과 비교하면 입구의 크기가 커 섭취 후 이동 과정의 보관 용이성이 떨어진다.
문제는 보증금 300원이 만만찮다는거다. 반환이 어려울 것으로 기대될 때 심리적 소비 저항이 발생할 수 있는 금액이다. 보증금 300원은 ‘반환 의사’에 대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정해진 가격이다. 심리적으로 ‘버리기는 아까운 돈’이란 말이다. 대상 점주들은 30~40%의 매출 감소를 토로했다. 소비자들이 미실시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주장이다.
보증금제의 주요 성패 요인 중 하나는 반환이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도 예외의 범위가 너무 크다. 매장 100군데 이상 프랜차이즈가 아닌 매장은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매장은 전체의 30%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2일 제주와 세종에 선도사업이 시행됐으나, 대상 매장 40%가 이런 형평성을 이유로 보이콧하고 있다.
|
이 법 제정 당시 재활용 업계와 환경부 내부에서도 부정적 시각을 개시했으나 결국 일회용품을 줄이겠다는 맹목적 목표하에 법이 통과됐다. 이후 거듭되는 유예와 누더기식 제도 변경으로 일회용컵 사용이 획기적으로 감축되기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고시를 통해 전국 시행에 대해 ‘3년 내’ 기한을 제시, 전국 확대 시행은 제주와 세종에서 1년여의 시행 결과를 평가한 이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짧지 않은 시간을 이대로 흘려 버려야할 수도 있다.
이데일리는 지난해 10월 순환경제 선도국 독일에 대한 기획기사를 통해 독일의 다회용컵 사용 시스템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소형 매장에서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곳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수의 다회용기 서비스 업체가 회수체계를 공유하면서 형성된 시장 친화적, 친환경적 생태계다.
독일 정부는 플라스틱 포장재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케이터링, 배달 서비스 및 레스토랑 등 최종 유통업자에게도 재사용(리유저블) 포장재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발생했다. 법적으로 소비자들은 다회용기와 일회용을 선택할 수 있지만, 독일 사회는 이미 다회용기 시스템이 공고히 자리잡은 상태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장에 독일 정부는 이처럼 법적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재사용 시장을 촉진한 것이다. 여기에 일회용품 제품 생산업자에게는 징벌적 세금을 메겨 일회용품 사용 유인을 크게 떨어뜨릴 계획이다. 일회용 플라스틱컵의 경우 kg당 1.23유로(1600원)로, 우리나라는 이와 유사한 폐기물 부담금이 kg당 150원 수준이다.
당근책도 있다. 재사용 용기에 대해서도 친환경 마크인 ‘블루엔젤(Blue engel)’ 수여 기준을 제정함으로써 인증 기업에 강력한 홍보 수단을 제공했다. 블루엔젤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과 권위 있는 환경마크다. 리유저블컵은 인간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물질의 사용을 피해야하고, 최소 500번의 헹굼 주기를 견뎌야하며 수명이 다하면 회수해 기계적으로 재활용해야 한다. 재사용 컵 시스템 사업자는 물류계획, 운송경로, 운송차량 등이 생태적으로 환경에 유리한지를 보여줘야한다.
어차피 일회용을 줄이는 것은 번거롭기엔 마찬가지다. 다회용기는 환경에도 일회용품 재활용보다 유리하다. 생산단계에서는 일회용품에 비해 높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만, 사용 횟수가 늘수록 환경적으로 유리해는 속도가 더 가팔라지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다회용기 서비스 업체들이 있지만, 아직 시장은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