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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자금 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투입하는 등 자금 시장 돈줄을 잇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로 지목되는 2금융권의 자금 사정은 당장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결정 번복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흥국생명은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결정을 전격적으로 번복했다. 흥국생명은 “2017년 11월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해외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했다”며 “당사는 최근 콜옵션 연기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을 조속히 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국내외 채권시장에 확산하면서 대내외적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한국채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흥국생명에 이어 DB생명도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를 내년 5월로 변경하면서 국내 보험사들의 자금 조달 여건은 급격히 악화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결국 현재의 비정상적인 높은 금리 탓에 실리를 택했던 흥국생명이 국내 금융사들의 외화 표시 채권 가격이 급락하는 등 시장 혼란이 커지자 돌연 입장을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급한 불은 끈건 금융당국의 요청을 받은 은행권이다. 흥국생명이 콜옵션 행사용 차환을 위해 발행한 환매조건부채권(RP) 4000억원을 주요 시중은행들이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다만 모기업인 태광그룹은 대주주 증자를 통해 자본확충에 나서야 한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결정을 철회한 것은 금융당국이 대주주 증자와 콜옵션 행사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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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 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이미 커진 상태였기 때문에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에 대한 시장의 충격은 더욱 컸던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이 사태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다소 안일하게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흥국생명 등의 콜옵션 미행사 결정에 ‘합리적인 선택’이라며 이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보험사들의 이 같은 조치에 채권 시장이 더욱 경색되면서 여신전문금융회사(카드·캐피털사), 저축은행 등도 자금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여전사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여신전문금융채(여전채)의 금리는 갈수록 치솟고 저축은행들도 더 많은 금리를 지급하고서 돈을 끌어올 수밖에 없는 처지다.
금융당국은 50조원+알파(α) 유동성 공급 대책 발표에 이어 5대금융지주의 95조원 지원까지 이끌어 내는가 하면 연일 업권별로 시장 점검 회의를 개최하는 등 자금 시장 안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커지는 금융당국 책임론…“한국은행 직접자금 투입해야”
하지만 레고랜드 사태와 마찬가지로 이 같은 금융당국의 뒤늦은 노력과 비례해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융당국의 책임론 역시 확산되고 있다. 실제 레고랜드 사태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채 관련 조치를 할 경우 금융당국과 협의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등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글로벌 긴축 기조에 따른 기준금리 지속 인상 국면에서 자금 시장 상황이 당분간 나아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 이에 유휴 자금 재배치 성격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증권시장안정펀드 등의 간접적인 조치보다는 한국은행의 직접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금융리스크센터장은 “한국은행이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가동해 낮은 신용도의 2금융권 채권들을 사 주는 방식 등을 통해 시장에 새로운 자금을 투입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그런 채널들을 사전적으로 좀 확보해 둘 시점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