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탠더드 수준의 거버넌스만 갖춰져도, 코스피는 주변 증시와 비교해 지금의 2배로 오를 수 있다고 봅니다.”(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코스피 지수는 올 들어 2200선(7월6일 종가, 2292.01)까지 폭락하며 전고점(3300선)보다 약 30% 하회하기도 했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굵직한 위기 때와 맞먹는 수준이다. 온갖 거시경제 악재 속에 글로벌 주요 증시와 비교해서도 조정이 두드러지자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가 재차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코스피의 지난 10년간 주가수익비율(PER)은 15.8배로 선진국 평균(21.5배)와 신흥국 평균(19.6배)를 모두 크게 밑돈다. 올해엔 10배마저 하회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G’가 시급한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거버넌스는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 조정 메커니즘을 의미한다. ESG가 글로벌 기업 경영과 기관투자자의 중요한 지향점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한국에서 유독 거버넌스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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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역사가 긴 미국에서 기업지배구조 관심이 대두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알려진다. ‘이사회경영:ESG와 기업지배구조’에 따르면 연방의회의 푸조(Pujo)위원회 조사(1912년) 후 ‘클레이튼법’(1914년)이 제정됐다. 90여 년이 지나 2001년엔 미국 시가총액 상위 엔론(Enron)의 역대 파산 사건과 맞물려 회계부정, 불법 내부거래 등으로 수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으면서 부각됐다. 이후 2002년 미국 회계개혁법이 도입됐다. 독일에선 2000년 OECD의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을 참고해 관련 안을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선 1990년대 이사회 개혁 논의와 함께 사외이사제도 채택(POSCO 등)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외환위기 기업 도산 등 금융시장 파장 속에 기업지배구조 문제가 부각됐다는 평이다. 국내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은 1999년 제정돼 개정을 거쳐왔다. 주주친화적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지금도 한국은 거버넌스 이슈로 들썩이고 있다. LG화학의 ‘쪼개기 상장’부터 카카오페이 경영진 스톡옵션 매도 등으로 인한 논란이 크게 불거졌다.
한 자산운용사 경영진은 “자본이 부족했던 우리나라는 급속한 경제 발전이 이뤄졌다”며 “투자 등 기업의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구조 등이 후진적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상범 경기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 기업지배구조 특징은 지분을 통해 절대적 통제력을 가진 대주주가 존재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 “G, 글로벌 스탠더드만 돼도 코스피 2배”
거버넌스 이슈는 국내 증시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으로 유명한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운용사 KCGI의 강성부 대표는 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으로 ‘상속 및 승계 환경’(세제·기업 문화)와 ‘이사회의 독립성 상실’을 꼽고 있다. “높은 상속·증여세와 배당소득세에 경영권을 쥔 대주주는 배당을 늘리거나 주가가 비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사회와 경영진은 이사회, 그룹으로서의 경영진 이익을 성취하려는 경우가 많아 이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에선 증권거래법에서 대주주나 경영진 이익 결부 사안에 엄격한 검증을 거친다. 이사회 결의만으로 이뤄진 결정엔 일반 주주 소송을 통해 배상 청구가 가능하고, 대주주 외 일반 주주들의 다수결을 거친다.
이창환 대표는 “미국은 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될 경우 집단소송이 가능하고 판례에 따라 이사들이 책임을 지지만, 우리나라는 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며 “결국 미국처럼 가려면 이사가 주주가치에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대만은 지배구조에서 최고 선진국이 아님에도 기업 멀티플이 한국의 2배”라며 “대만은 의무공개매수 등 스탠더드 수준으로 평가되는데, 이 수준만 돼도 코스피 지수가 2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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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주주행동주의는 2016년 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ESG 트렌드 속에 기업경영 감시와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며 빠르게 늘었다. 최근 주주행동주의는 배당 확대 등 단순 이익 추구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경영진 교체, 전략 변화, 구조조정 등 기업경영 전반에 개입하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주 무대였던 미국보다 저평가된 기업이 많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다. 액티비스트인사이트,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주행동주의 대상 기업수는 33개사로, 2019년(8개사) 대비 313% 증가했다. 미국(209개사) 다음으로 가장 많다.
2020년 상법 개정 이후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가 도입되면서 최대주주 3% 의결권 제한에 더해 주주제안 후보가 선임되는 사례가 늘었다. 올해 △얼라인파트너스의 에스엠 감사 후보 선임 주주제안 △차파트너스자산운용과 소액주주연합의 사조오양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 선임 통과가 사례로 꼽힌다. 과거 엘리엇과 현대차, 삼성물산·제일모직 사례, 소버린과 SK, 칼 아이칸과 KT&G 등이 대기업이 주를 이뤘다면 중견기업으로 대상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다만 자칫 기업의 성장 잠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균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혁 상장협 정책2본부장은 “주주행동주의의 순기능이 있는 반면 경영권 공격 방어를 위해 기업이 자기주식을 매수하거나 투자 부진에도 배당성향을 높여 성장 잠재력을 저하시키는 문제도 있어 균형이 필요하다”며 “기업은 주주친화정책을 통해 주주와 적극적 소통에 나서고, 주주행동주의자도 단기 실적이 아닌 장기적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세계가 움직인다…G 넘어 ESG 가속화해야”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선 하루빨리 G를 넘어 ESG를 가속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SG는 글로벌 연기금, 운용사의 책임투자가 보편화되면서 투자에 내재화되고 있다. OECD 한 관계자는 “OECD는 회원국들의 거버넌스는 이미 평균 이상이 됐다고 보고 기후변화를 비롯한 ESG 화두에 주력하고 있다”며 “한국과 다른 부분”이라고 말했다.
ESG는 자본주의가 지속 발전하기 위해서 주주자본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기업과 관련된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철학을 반영한다. 주주자본주의는 기업의 역할이 주주의 부를 극대화하는 데 의미가 한정된다.
고 전 대사는 “OECD 회원국들은 오히려 한국을 경제적으로 강한 나라로 보고, ESG 모든 방면에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며 “한국은 그동안 리드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점차 노력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ESG 잘 지킨 기업들의 높은 수익률도 중요한데, 자리잡기까지 부침도 불가피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 국면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가치의 역설’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그 예”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