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에 위치한 한국민속촌은 매 계절마다 새로운 테마와 캐릭터들로 옷을 갈아입는다.
조선시대 주막에서 일하는 주모부터 선녀, 사또, 염라대왕까지 다양한 역할과 이에 맞는 섬세한 의상과 분장은 마치 과거에서 되살아나온 듯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조선시대를 재현한다. 민속촌 곳곳을 누비며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공연하는 이들은 한국민속촌의 조선캐릭터.
지난 2014년부터 공식적으로 캐릭터 아르바이트 모집을 시작한 한국민속촌은 ‘사또의 생일잔치’, ‘웰컴 투 저승’ 등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마당극을 진행해오고 있다.
각 테마에 맞는 특색 있는 캐릭터들과 젊어진 민속촌의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지면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관람객들의 꾸준한 사랑 받고 있다.
스냅타임이 한국민속촌 조선캐릭터의 역사를 함께한 주역, 염라대왕 역의 김탁(35)씨와 왕선녀 역의 하효정(28)씨를 만나봤다.
"연기자의 꿈, 민속촌에서 이뤘죠"
뮤지컬 배우와 연기자를 희망하던 두 사람은 민속촌에서 그 꿈을 이뤘다.
대학교 입학 이후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하씨는 고민이 생겼다. 뮤지컬 배우에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늦게 출발했다는 약점을 보완할 만큼 노래나 연기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며 “자연스럽게 뮤지컬 배우와 비슷한 다른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우연히 SNS에 올라온 민속촌 아르바이트 모집 글을 통해 조선캐릭터를 알게 된 것.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관람객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조선캐릭터들의 모습에 하씨는 ‘아, 이거다!’를 외쳤다. 그는 “이곳에서 일하면 굳이 뮤지컬 배우가 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7년 전 갑작스러운 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던 김씨에게도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연기자 지망생이었던 그는 “사고로 척추가 부러져 3개월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며 절망스러웠던 당시를 회상했다.
사고 후 재활이 필요했던 시기, 그는 “몸이 불편했지만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던 중 조선캐릭터를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 당시 SNS에서 가만히 누워있어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꽃거지 아르바이트’가 화제였다”며 “5분만 서 있어도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픈 상황에서 저렇게라도 일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도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로 이 일을 시작한 김씨와 하씨는 어느덧 7년, 5년 차에 접어든 민속촌의 정규직이 됐다. 고용불안을 해소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것.
김씨는 “열심히 하다 보니 2년의 계약직 근무 이후에 자연스레 정직원으로 전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중에서는 1년 만에 전환된 경우도 있다. 정규직 전환은 상황에 따라 회사에서 괜찮은 인재라는 판단이 들면 승진 기회를 주는 편이다”라고 전했다.
화려한 무대는 '숨은 노력' 덕분
다양한 캐릭터와 개성 있는 복장, 다채로운 공연 등 이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는 이들의 숨겨진 노력이 있다.
민속촌의 조선캐릭터·공연은 배우와 기획자의 손에서 직접 탄생한다. 계절마다 새로운 테마를 정하고 그에 맞는 행사·공연·캐릭터를 기획하는 것. 배우들은 공연 연습은 물론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위해 분장과 의상에도 힘을 쏟는다.
이번 가을 시즌은 저승·환생을 주제로 한 ‘신묘한 마을’로 구미호, 귀신, 저승사자, 염라대왕 등 캐릭터도 각양각색이다. 배우들의 아이디어가 묻어있는 의상과 분장은 상상 속의 그림을 현실로 구현해낸다.
캐릭터에 몰입해 관객들을 대해야 하다 보니 이들에게 ‘상황 대처능력’은 필수 역량이다. 김씨는 “사실 공연 대사 말고는 주어진 대본이 없다. 각자의 캐릭터와 콘셉트에 맞게 관람객들과 소통하고 대사를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어떤 상황이라도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제각각인 반응을 바로바로 캐치해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하니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며 “평소 유튜브·예능을 보면서 요즘 트렌드나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근무 환경이 주로 야외다보니 두 사람은 날씨도 이 일의 어려운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하씨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직업”이라면서도 “요즘 날씨가 추워졌지만 사람들 만나서 공연하고 일하다보면 열이 나서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때 가장 매력”
민속촌 캐릭터를 희망하는 이들 사이에서 민속촌은 꿈의 무대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뽑는 데에 ‘조선캐릭터 오디션’까지 있을 정도. 지망생에게 전하고 싶은 도움말이 있냐는 질문에 하씨는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객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스스로도 가장 만족했던 캐릭터는 ‘내 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낸 캐릭터’였다”며 노래 실력과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자연스러운 매력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끼도 좋지만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씨는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또라이’ 같은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지 ‘진짜 또라이’를 원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며 “간혹 SNS 속 열정적인 모습을 보시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 일은 어디까지나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강조했다.
/스냅타임 정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