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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읽어주는 남자]'실패한 성추행' 처벌 받을까?

조용석 기자I 2015.11.29 06:00:00

신체접촉 없어도 의도 인정되면 강제추행미수로 처벌
미수죄도 유죄 확정 시 20년간 신상정보 등록 대상
“합의된 관계 아니면 신체접촉 시도조차 말아야”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지난해 8월 초저녁 술에 잔뜩 취한 A씨(46)는 충남 홍성군 소재 한 편의점에 들어가 난동을 피웠습니다. 폭언과 욕설을 내뱉던 A씨는 갑자기 여자 아르바이트생 B씨에게 “나 삼촌인데 손 잡아줘”라고 말한 뒤 오른손을 뻗어 B씨의 손을 잡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B씨는 뒤로 물러서면서 가까스로 A씨의 손길을 피했습니다.

흔히 ‘성추행’으로 불리는 강제추행은 폭행 또는 협박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접촉을 하는 범죄를 뜻합니다. 강제추행은 신체접촉에 실패해도 시도한 것만으로도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신체 대부분 부위에 대한 접촉 및 시도에 대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경고합니다.

A씨는 강제추행미수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강제추행미수죄에 대한 처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강제추행과 동일하게 처벌합니다.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이미 동종범죄 전과가 있던 A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합니다. 또 2년간 신상 정보공개 명령까지 내립니다.

최근 대법원의 판결도 강제추행미수에 대한 시각을 잘 보여줍니다. C씨(30)는 지난해 3월 버스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는 D양(당시 17세)을 발견하고 200m를 쫓아갔습니다. 외진 곳에서 D씨를 뒤에서 안으려는 심산이었죠. 하지만 인기척을 느낀 D양은 뒤돌아보면서 “왜 그러느냐?”고 소리를 쳤고 C씨는 D씨를 2~3초간 바라보다가 자리를 떠났습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C씨의 이 같은 행위를 아동·청소년에 대한 강제추행미수로 판단했으나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1m정도 간격을 두고 양팔을 높이 벌린 자세를 취한 행위나 피해자를 빤히 쳐다본 것만으로는 폭행이나 협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강제추행미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뒤돌아보며 ‘왜 이러세요?’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피해자의 몸을 껴안는 추행의 결과에 이르지 못했다”며 “몸에 닿지 않았어도 뒤에서 피해자를 껴안으려는 행위는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로 폭행행위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지난 12일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역시 대법원과 같은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요.

강제추행의 인정 기준은 피해자의 감정입니다. 피해자가 성적인 수치심이나 혐오감 등을 느꼈다면 부위를 떠나 강제추행을 인정될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7세 여아를 상대로 이른바 ‘똥침’을 한 60대 노인 E씨(61)에게 항소심에서 강제추행죄가 인정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서울고법은 “피해자는 피고인의 행위를 진술하면서 ‘기분이 조금 부끄럽다’거나 ‘두 번째 찌를 때는 충격을 받아, 화가 많이 났다’고 말했다”며 “피고인이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해도 친분관계가 없는 여아의 항문 주위와 배를 1회씩 찌른 행위는 성적 도덕관념에 반한 추행에 해당한다”고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또 E씨의 범행은 7세 여아를 대상으로 했기에 5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3000만~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13세미만 미성년자 강제추행)이 적용, 형법상 강제추행(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보다 훨씬 무거운 형이 선고됐습니다. E씨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입니다.

강제추행과 미수죄 모두 유죄 확정판결을 받으면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됩니다. 20년 동안 매년 한 차례씩 경찰서를 방문해 신상정보를 갱신하고 사진촬영을 해야 합니다. 또 10년간 교육기관이나 의료기관 등의 취업도 제한됩니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최근 성범죄로 벌금형 정도의 가벼운 처벌을 받고도 항소하는 이유가 매우 많은데 신상정보 등록의 영향이 크다”고 말합니다.

이승우 법산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최근 강제추행 관련 법원의 판결을 보면 신체 어느 부위를 만졌는지 보다는 피해자가 느낀 혐오감과 수치심을 적극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합의된 관계가 아니라면 신체접촉을 하거나 의심받을 수 있는 행동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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