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도 인간과 같이 생로병사가 있다. 지난 1972년 울산 방어진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현대중공업은 올해 업력 42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박을 건조하는 세계최대 조선회사다. 한국을 조선 왕국으로 만든 신화의 주인공이다. 이 회사가 중병에 걸렸다. 지난 2분기 1조원, 3분기 2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투병사실을 대외에 알렸다. 청년기와 장년기를 거치면서 이런 병에 걸린 건 처음이다. 의료진은 암세포가 퍼져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국호의 자랑스런 주인공이 이대로 가면 곤란하다. 한 기업의 일이 아니다.
이런 비상국면에서 권오갑 시장이 ‘구원투수’로 투입됐다. 해병대 장교 출신인 권 사장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지 않은 우의차림으로 직원들에게 다가갔다.(사진) 현대중공업이 얼마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장면이다. 그는“회사의 잘못을 책임질 기회와 시간을 달라”고 직원들을 달랬다. 사장이 비를 맞으면서 직원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직원들도 이심전심으로 ‘오늘’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대중공업엔 노사평화 대신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노동조합은 파업을 결의하고, 회사 측을 압박하고 있는 상태다.
그가 속전속결로 판을 새로 짜는 건 현대오일뱅크 대표 경험에서 우러놨다는 전언이다. 권 사장은 주위에 “현대오일뱅크는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회사 체질을 꾸준이 바꿔 알찬 회사로 거듭났지만, 현대중공업은 1등에 안주해 오늘의 위기를 만든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회사나 개인 모두 위기를 맞을 수 있지만, 그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걸 절감한 듯하다.
권 사장이 그리는 현대중공업 구하기 그림이 맞다. 최고경영자(CEO)가 위기 탈출 처방전을 제시한뒤 조직을 추수리면 반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총대를 매는 자세가 좋다.
현대중공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과 함께 ‘메이드인 코리아’ 제조업 시대를 이끌었다. 권 사장의 현대중공업 재생 프로그램은 한국 제조업의 재건에 방향타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권 사장은 이 엄중한 상황을 잘 알고 있을 노조를 설득, 암병동 탈출 프로젝트의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내부의 적이 가장 큰 위험요소이다. 우군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상 실리를 취하기 어려운 노조도 명분마저 잃으면 공멸의 길로 접어든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위기가 현대중공업을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길이고,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길이다’는’는정주영 명예회장의 유훈대로다.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주역이 병마를 훌훌 털고,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총괄부국장겸 산업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