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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몰랐던 내 퇴사?…'슬프게도 이게 내인생'[툰터뷰]

김혜미 기자I 2025.04.20 08:00:00

카카오웹툰 슬이인생의 슬작가 인터뷰
시즌1서 악덕 중기·위험한 월셋방 등 험난한 인생 그려
최근 시즌4에서는 결혼 준비과정과 신혼생활 풀어내
결혼, 생각 없었지만 "남친과 헤어지는 것보다 나아"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네에? 작가님, 잠시만요. 결혼이라구요?”

본인의 일상을 재미로 풀어내는 웹툰, 즉 ‘일상툰’ 작가들이 결혼 소식을 알리거나 어느 날 갑자기 신혼생활을 그리기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이런 내용의 댓글이 등장하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툰이다보니 평소 본인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고 생활 패턴이나 좋아하는 취미, 음식 등에 관해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연애에 관해서만 쏙 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연애에는 관심 없다는 태도를 자주 보였을 경우 더욱 그러하다.

슬프게도이게내인생(이미지=카카오웹툰)
‘슬프게도 이게 내 인생(슬이인생)’의 슬 작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슬 작가의 웹툰에서는 홀로 있을 때면 게임을 즐기거나 게으름을 피웠고, 결혼에 뜻이 없음을 공공연히 밝혀온 데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어울리는 친구가 많아 연애를 할 만한 시간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최근 휴재를 끝내고 복귀한 슬 작가는 본인의 결혼 소식을 전했는데, 배우자는 함께 어울려 온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연애 사실을 만화에서 밝히지 않은 사실에 대해 ‘내가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연애 관계가 언제 끝날지 알수도 없고, 실제로 결혼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근 시즌 댓글에는 실망스럽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작품에 많이 몰입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마도 생활툰이 워낙 사생활을 위주로 하기에 작품을 보면서 갖게 되는 친밀감 때문이었을 듯 하다. 슬 작가가 암암리에 연재했던 청소년 관람불가 웹툰 ‘오선생을 향해’가 경험담에 픽션을 약간 섞은 작품이란 점에서 ‘현재 남자친구가 없어서 가능한 내용 일거야’라는 인식을 심어줬을 수도 있다.

그만큼 슬 작가의 작품은 그동안 솔직함을 무기로, 개그를 양념 삼아 많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왔다. ‘슬프게도 이게 내인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연차를 쓰겠다고 하는데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상사나, 밥먹을 시간도 없이 일해야 했던 광고회사, 본인에게 통보 없이 단체메일로 정규직 전환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던 경우 등 실제 경험에 기반하기에 독자들은 함께 분노하고 함께 웃었다. 그렇기에 어쩐지 연애에 관해서만큼은 털어놓지 않았던 작가에게 독자들의 서운함도 배가되는 것이리라.

슬 작가는 이번 인터뷰에서 시월드 등 결혼 생활에 관한 편견 때문에 실제로 결혼에 뜻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결혼을 하고 싶어했고, 그와 결혼을 하지 않는다면 헤어져야 한다는 압박감이 결혼으로 이끌었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연재 초반 악덕 중소기업 사장님들에게 시달리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잘 표현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좋지 않은 회사라는 걸 알면서도 다녀야 했던 이유가 있나요.

저를 뽑아주는 곳이 그런 회사들 뿐이었어요(웃음). 고향이 전라북도 남원인데, 대학 졸업 후 귀향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취업을 해야 했어요. 일단 월세를 벌어야 하니까 급히 취직을 했죠. 제 전공이 디자인학과 내 미디어콘텐츠학과인데 사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경력을 쌓기 위해 받아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들어가는 상황이었어요.

△회사를 몇 군데 다녔나요.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는.

네 군데 정도 다닌 것 같아요. 제일 오래 다닌 건 1년 조금 넘게 다녔던 곳이었고, 나머지는 자의반타의반으로 4개월 다닌 곳도 있고 1개월 다닌 곳도 있었어요.

△오래 전 1층에 있던 경비실을 개조한 월셋방이 생각나는데요. 길가에 곧바로 문이 있어 위험할 수도 있고 기능상으로도 불편해서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곳이 거기밖에 없었어요. 겁이 없기도 하고, 이상하긴 한데 끔찍하다는 생각은 안했습니다. 무조건 고향 집에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생각이 버티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위치가 그래서 그렇지 옵션은 다 있었습니다.

△만화상으로는 게으르고 생각없이 지내는 사람처럼 본인을 표현하셨지만 실제로는 꾸준한 운동과 자기개발을 하는 건실한 청년 같은 모습도 있었습니다.

사실 소재 때문에 그린 건데요, 헬스도 그렇고요. 원래는 동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 하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고요. 저는 집에서만 살 수도 있는 사람인데, 그래도 뭐라도 해야 소재가 나오니까 시작한 건데 막상 해보니 재밌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웹툰 덕에 이제는 뭐든 일단 해보자는 느낌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운동은 워낙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살아보니 건강이 안좋아져서 시작했어요. 여러 가지 해봤는데 제일 잘 맞는 것이 헬스였고요. 요새는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멋진 청년의 느낌보다는 불안해서요.

△살면서 제일 열심히 했던 일이 뭔가요.

웹툰작가요. 나머지는 대부분 성공해 본 경험이 없네요. 명문대 나온 부모님에 오빠도 공부를 너무 잘해서 상대적으로 잘하지 못했던 저는 맨날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반항도 많이 했고요.

△결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독자들이 많이 놀라움을 표했는데요.

-제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도 아무도 안믿었어요. 저는 사실 웹툰 속 이미지와 현실 이미지가 거의 비슷하거든요. 어려서부터 엄마가 늘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에 평소 결혼이란 게 무서웠고, 막연한 시월드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도 있었어요. 그래서 결혼 시스템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혼자 사는 삶도 만족스러웠어요. 아이를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요.

그러다 남자친구가 결혼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내가 안하고 싶다고 하면 언젠가 놓아주어야 하잖아요. 헤어지기엔 너무 잘 맞는 사이라서 결혼을 해서 오는 고통과 헤어졌을 때의 고통을 상상해봤고, 결혼이 상대적으로 덜 힘들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결혼을 해보니 실제로는 어떤가요.

작년 5월에 결혼을 해서 좀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아요. 시부모님께서도 잘해주시고요. 혼자 살 때는 사실 하루에 한 번도 안웃은 적이 대부분이었는데 결혼하고 나니 남편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하루에 한 번은 웃게 되더군요.

△다른 장르에 도전할 생각은 없나요.

항상 생활툰이 아닌 걸 해보고 싶은데 청소년 이용불가 작품인 성인물 ‘오선생을 향해’를 이미 그리긴 했어요. 다른 필명으로 연재했는데 그림체가 비슷해서 아는 분들은 다 아시더라고요. 늘 다양한 장르에 대한 꿈은 꾸는데 생활툰이랑 시스템이 너무 달라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서 잘 못하는 느낌입니다. 다만 다른 장르를 그리더라도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또 개그만화가 될 것 같아요.

△작가님은 악덕 중소기업에서 일하다 연재 중이던 웹툰이 데뷔하게 돼 꿈꾸던 웹툰작가가 된 경우인데요. 지금 20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도 그때 방황을 많이 했다고 생각합니다. 직종도 바꾸고 회사도 옮겼죠. 다른 친구들에 비해 여기저기 너무 헤맨 것도 같고 가끔 도망도 쳤고, 당시엔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결국 그런 경험들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으로 보면 ‘맵(지도) 밝히기’랄까요. 헤매면서 지도를 밝히고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모든 발걸음들이 의미가 있기에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헤매는 것도 괜찮아요. 다 도움이 됩니다.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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